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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흔적 - 잡글

솔직함과 솔직하기 힘듦에 대하여 쓰려다 갈길을 잃고 잡소리를 길게 휘갈기게 된 글

 

 

 

 

 

싫은 건 싫다고 말하라. 그대들이 잃을 것은 무난한 사람이라는 평판이지만, 얻을 것은 자유와 행복이다.

 

-문유석, 《개인주의자 선언》 중에서.

 

 

 

1.

 

아직 이 책을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sns 어디선가 수많은 지지(좋아요, 리트윗, 하트 중에서 어떤 종류의 지지였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를 받은 이 인용구를 읽고 머리를 망치로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나는 왜 그동안 질식할 것 처럼 살고 있었는지, 이렇게 나를 숨 못 쉬게 만드는 사회적 압력이라는 구속에 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묵묵히 살아가고 있었는지, 알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금까지 30년 넘게 살아오면서 속했던 수 많은 공동체에서, 여러 인간 군상들을 관찰하고 어떤 경향성을 도출해낸 바로는, 자기 의견이 없는 사람일 수록 많은 사람에게 사랑을 받고 인기를 얻는다는 사실이었다. 특히 여성일수록 그러한데, 자기 주장이 강한 사람일수록 미움받기 쉬운 경향이 있다(소수의 매니아가 좋아할 수는 있겠지만).

 

 

 

2.

 

내가 여기서 이야기하는 '자기 주장'이란 어떤 ism이나 거창한 신념 따위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예를 들면 음식을 먹거나 음료를 마시러 갈 때도, 자기가 선호하는 메뉴를 주장하지 않고 대다수가 선호하는 메뉴로 통일해 주고, 상대방의 이야기에 웬만하면 강한 어조로 반박하지 않고 대부분 맞장구를 쳐주거나 돌려서 둥글둥글하게 이야기하는 사람을 말한다.

 

 

즉, 모두가 함께 하는 점심 식사 후의 커피 타임에 다같이 <아이스 아메리카노>나 <카페 라떼>를 주문하는데 혼자 엉뚱하게 <리스트레토 비안코>(제조 시간도 더 오래 걸리는!)를 고른다든지, 모두가 삼겹살을 먹고 싶다고 말할 때 혼자서 아구찜을 먹고 싶다고 주장하는 등 튀는 행동을 하는 사람은 전자에 비해 다소 더 미움받기 쉬운 사람이라는 이야기이다.

 

 

 

3.

 

미움 받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물론 이 글을 쓰는 본인도 그렇다. 흔히 청소년에서 청년, 기성세대로 삶의 단계가 진행되어 갈수록 사회화가 고도의 수준으로 이루어지며 세련된 사회적 화법으로 이야기하기를 요구받게 된다. 청소년기 아이들의 대화를 엿들어보면 문장을 구성하는 단어의 절반이 욕임을 심심찮게 볼 수 있는데, 나이든 성인이 될 때까지도 욕설을 섞어 말하면 점잖지 못한 사람으로 업신여기어 지는 걸 보면 알 수 있다.

 

이 사회화의 과정은 퍽이나 개인차가 있는 편이다. 간혹 아주 어릴 때인 유소년기 때부터 미움받지 않고 좋은 평판을 유지하는 스킬을 획득한 사람도 있고, 청년기가 거의 지나가면서야 깨닫게 되는 사람도 있으며, 평생 이런 스킬을 획득하고 싶은 마음이 별로 없어 보이는 마이웨이형 인간도 있다.

 

사실 나처럼 평범한 사람들은 마이웨이형 인간에 대한 어느 정도의 양가감정을 지니고 있는 것 같다. 별종이라며 손가락질하는 한편, 미움받거나 외계인 취급 받는 걸 두려워하지 않고 자신의 주장이나 취향을 솔직하게 내보이는 그들의 내면을 부러워하는 양면성도 있는 듯.

(단, 마이웨이형 인간이 마이너적 성향을 가지고 있을 때에 한정지어 부럽다는 이야기이다. 어느 권력의 층위에서건, 기득권 쪽에 속한 덕분에 자기 주장을 공공연하게 발화하는 과정에 어떠한 제제도 받지 않을 수 있는 위치의 인간이 부러운 것은 아니다. 이는 의견을 발화할 수 있는 기회의 불평등을 발판삼아 호사스럽게 누리는 우위를 <솔직>이라고 포장하며 기만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본다.)

 

 

나는 마이웨이형 인간과 거리가 멀다. 미움받을 것을 두려워하고, 평판을 걱정하는 평범한 사람이다. 솔직하기 쉽지 않은 위치에서 솔직할 수 있는 인간에 대한 부러움을 지니고 살아가는 사람이다. 나는 그렇게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냥 다수가 원하고 느끼는 대로 동조하고 그것이 내 의견이며 신념이라고 합리화하며 살아가면 편리할 텐데, 죽어도 용납할 수 없기 때문에 표출은 하지 못하고, 내적으로 자아 분열을 일으키며 살아가는 인간이다.

 

 

 

4.

 

학부 시절 활동했던 동아리가 생각난다. 그 동아리에서 활동하는 동안에는 잘 몰랐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지금까지 엮였던 공동체 중에서 가장 개성 강한 사람들이 모인 동아리였다. 한 가지 예를 들자면 그 동아리에서는 정기 회의 시간이 있었는데 약속된 시간은 오후 6-8시 사이였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저녁 시간대이기 때문에, 회의 전에 대개는 저녁 식사를 하고 와서 진행하곤 했다. 어느날엔가 저녁 시간에도 여느 때처럼 회의가 예정되어 있었고 5명의 회원들이 모였었다.

 

"저녁 먹고 회의하지?"

 

흔한 모임이었다면 학생식당이든 편의점이든 모두가 함께 가든지, 혹은 중국집이나 분식점에서 같이 뭘 시켜먹는다든지 했을 것이다. 하지만 5명의 회원들은 모두 저녁 끼니를 때우고 싶어하는 방식이 달랐기 때문에, 다섯 명 모두 각각 끼니를 해결하고 왔다는 이야기. 한 명은 학관에서 제일 저렴해서 1800원인 '학관B' 메뉴를 먹었고, 누군가는 배달로 오므라이스를 시켜 먹었고, 편의점에서 김밥을 사 와서 먹은 사람, 구내 매점에서 토스트를 사 먹은 사람, 저녁을 생략한 사람 등 각자 다른 방식으로 저녁 시간을 보내고 약속된 시간이 되자 다시 동아리방에 나타나서 회의를 시작했다. 보통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할 지도 모르지만, 내게는 이게 자연스러웠고, 이런 사람들로 이루어진 동아리라서 맘이 편했다.

 

 

 

 

5.

 

원래 나는 어려서부터 개인주의적 성향이 퍽 강한 편이다. 물론 한국 사회에서 자라났기 때문에 서구권 국가의 사람들에 비해서는 집단 의식이 더 잘 내재되어 있겠지만, 어쨌든 이런 성향으로 자라나게 된 데에는 성장 과정과 부모님의 영향도 큰 것 같다. 

학창 시절과 대학 시절도 개인주의를 고수하며 나름 비슷한 친구, 사람들 사이에서 섞여 지내다 졸업 후 첫 직장에 입사한 나는 컬쳐 쇼크를 겪게 된다.

내가 일했던 직장의 특성상 근무 시간 중에 점심 시간이 길어야 40분 정도로 짧게 주어졌는데, 모두가 함께 직원 식당에서 밥을 먹고, 모두가 함께 동시에 커피를 마시며 쉬다가 일을 하러 들어가는 문화가 내겐 충격적이었다. 하루 종일 일하는 동안 유일하게 주어지는 40분이라는 귀중한 시간을 왜 내가 원하는 방식과 다르게 보내야 하는지? 난 직장 동료들과 잠시 떨어져서 혼자서 내 방식대로의 쉬는 시간을 보내고 싶었는데?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스스로의 의견은 접어 두고 다수의 생활 방식에 따르는 방식으로 재사회화가 되어 있었다. 왜냐하면, 나는 미움받기 싫어하는 유리멘탈의 평범한 인간이었기 때문이다.

 

 

 

 

6.

 

지금은 다시 늦깎이 학생 신분으로 돌아가 있긴 한데, 여전히 나는 숨 막힐 것만 같다. 얼마 전 친구들을 만났을 때 모두가 삼겹살을 먹고 싶어해서 나는 보쌈을 먹고 싶었던 의견을 양보해야 했다. 끝까지 보쌈을 먹자고 우기거나 "너네는 삼겹살 먹고 와, 난 혼자 보쌈 먹을게 각자 먹고 와서 다시 만나자", 라고 해서 미움받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마지못해 동의한 것이다. 난 정말이지, 삼겹살을 먹고 싶지 않다. 맛이 없어서 싫어하는 게 아니라, 숯불에 음식을 구워먹는 조리 방식을 말그대로 <극혐>하기 때문이다. 삼겹살 뿐만 아니라 장어구이, 조개구이 등등 모든 숯불 구이 음식들이 싫다. 절망스럽게도 사회 생활 하면서 이루어지는 대부분의 회식은 숯불 구이류의 음식들이다. 난 항상 이런 음식점에 가면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스트레스 받지 않는 자신을 연기하면서 저녁을 먹게 된다.

물론 삼겹살이 맛있는 것쯤은 나도 안다. 막상 앞에 있으면 맛있게 몇 점 집어 먹긴 하는데, 유난스럽게 탄 부분을 일일이 다 떼어서 탄 부분을 최소화하여 먹는다. 숯불에 구운 음식에는 "벤조피렌"이라는 발암 물질이 포함되어 있고, 숯불이 타는 연기 속에는 호흡기 질환 및 폐암까지도 유발할 수 있는 PM2.5 초미세먼지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물론 발암 물질에 몇 번 노출된다고 해서 바로 암에 걸리지 않는 것쯤은 나도 안다. 나의 행동이 누군가의 시선으로 보면 유난스럽게 보일 수 있다는 것도 안다.

그렇다고 해서 어느 누구도, <숯불구이 요리를 먹으면서 스트레스를 받는 나의 성향은 다수의 성향과 다르며 다수의 즐거움을 방해하기 때문에>, 너의 성향은 잘못되었다고 비판하거나 유난스럽다며 가볍게 취급할 권리는 없다. 허나 다수의 생각을 따르기를 은근히 종용하는 사회에서, 미움받지 않기 위해 나는 나의 의견과 취향을 꾹 참고 가슴 속에 구겨 넣는다.

 

 

 

 

7.

 

나는 누군가가 내게 결혼 여부나 출산 경험 여부를 묻는 게 상당히 불편하다. 물론 한국 사회에서는 결혼 여부를 아는 것이 사회 생활하는 데 서로간에 편하다는 암묵적인 동의들이 있기 때문에 결혼 여부를 공유하는 것 자체에 거부감을 느끼는 것이 아니다. 단지, 나의 사생활에 대한 정보가 불필요한 자리에서조차 굳이 그런 질문을 받을 때 뭔가 발가벗겨진 듯한 기분과 당혹스러움을 느낀다는 것이다. 그래서 혹시 결혼했냐는 질문을 받을 때 "죄송하지만 이 자리에서는 대답하지 않고 싶습니다" 라고 솔직히 말하고 싶지만 역시나 미움받고 싶지 않기 때문에, 내 불편함을 꾹꾹 눌러담고, 웃으면서 "네" 라고 대답한다.

내가 속한 집단의 사람들이 어떤 여성의 외모를 두고 조롱거리를 삼으면서 킬킬대고 있을 때, <웃자고 하는 소리에 죽자고 달려드는> 프로불편러 소리를 들을까봐, 불필요한 논쟁에 휘말리고 싶지 않아서, "외모 가지고 웃음거리를 삼는 건 좀 아닌 것 같은데?" 라는 정당한 지적을 단 한 마디도 못하고, 단지 동의만 하지 않고 조용히 그 자리를 피하거나 빠져 나오기만 한다. 난 이렇게 비겁한 인간이다.

 

 

 

 

8.

 

사실 나는 원래 솔직하다는 평가를 듣던 사람이었으나 직장 생활 이후 점차 바뀌어가게 되었다.

내가 직장에 들어가서 들었던 말 중에서 나름 충격을 받았던 말은 누군가가 내게 비아냥거리면서 내뱉었던 말이었다.

 

"너, 되게 독특하구나."

 

도대체 내가 왜 독특하지? 이해할 수가 없었지만 나는 내 솔직함이 어디서든 별로 환영받지 못한다는 걸 점차 깨닫게 되었다. 솔직할 수 없는 상황들은 단순한 문화 생활과 취미에 대해서도 점차 입을 다물게 만든다.

 

몇 년 전 공부를 하면서 스터디 그룹에 참여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룹 구성원들과 대화를 나누다가 어쩌다 보니 만화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나는 내가 고등학교를 다닐 때 만화 동아리에 가입해서 활동하며 동인지를 내기도 했었고 나는 코스튬 플레이를 한 적은 없지만 우리 동아리원들 중에서는 코스프레를 하는 친구도 많았다는 말을 했는데 한 스터디원이 나에게 "실망이다" 라고 말해서 깜짝 놀랐었던 기억이 있다. 보통의 사람들은 출판 만화를 좋아하면 "오덕"이라는 부정적인 시선으로 본다는 것을 전혀 몰랐을 때의 이야기다.

 

우리 신혼집에는 TV가 없다. 혼수를 구입하면서 내가 남편에게 제안하여 일부러 TV를 구입하지 않았고 대신 오디오를 구입하였는데, 이것도 이상한 시선으로 보는 사람들이 있어서 굳이 남들에게 꺼내지 않게 되었다.

 

나는 개연성과 일관성이 떨어지는 스토리를 싫어하기 때문에, 쪽대본으로 써서 전체 플롯의 완성도와 설정의 설득력이 떨어지는 한국 드라마를 좋아하지 않는다. 역시나 유별나다는 소리(비호감에 가까운 뉘앙스가 섞여있다)를 듣고 싶지 않아서 한 시간 내내 한국 드라마 이야기를 하는 그룹에서는 침묵을 지키며 앉아 있거나 이내 자리를 피하곤 한다.

 

 

 

 

 

9.

 

솔직할 수 없는 이런 상황들에 대해서 이야기하자면 한도 끝도 없고, 민감할 수 있는 주제도 상당히 많은데 일부러 가벼운 주제만 담았다.

다수와 다른 의견, 반대, 이의제기, 그로 인한 시끄러움을 혐오하며 평화를 지향하는 사람들은 그 평화가 누군가의 인내와 원치 않는 침묵의 대가로 이루어진 평화이며 어떤 불평등 위에 가로놓여진 것인지 모를 것이다. "평화로운 가정"이라는 허상은 온갖 차별과 수고를 다 짊어지고 자신의 욕망을 거세하며 인내하는 어머니의 희생을 바탕으로 한다. 국민 대통합이라는 허울 좋은 구호는 약자들이 불평등을 호소하며 제 목소리를 내는 것을 은폐하려는 욕망에 기반하는데, 이 욕망이 많은 이들에게 공유되며 설득력을 갖는 한국 사회의 현주소에서만 봐도 알 수 있다.

 

 

 

 

 

 

9.

 

숨 막힐 것 같다는 표현을 이 글에서 꽤 여러 번 썼는데, 내가 속한 집단의 특수성에 대해서 약간은 언급을 하고 넘어가야 할 것 같다. 물론 내가 위에서 예를 든 건 어떻게 보면 지나치지 않나, 생각보다 유연한 집단도 있다고 말할 사람도 있을 지 모르겠다. 내가 속한 집단은 특성상 타 집단에 비해 다소 경직되어 있고, 집단과 위계 서열을 중시하는 문화가 발달한 편이다. 위의 4.번에서 예로 들었던 개성 강한 친구들로 넘쳐났던 그룹에 비해, 취향도 말투도 옷 입는 법도 여가 생활과 취미조차도 모든 면이 무난한 사람들이 많은 곳이다. 사소한 취향부터 자기 검열을 하다보니 이야기해도 되는 취미나 취향까지 검열하게 되는 면이 있다는 점은 감안을 해야 할 것 같다.

 

 

 

 

 

 

 

10.

 

오랫만에 장문의 글을 쓰려니 진이 다 빠진다. 쓰고 나서 읽어보니 정말 못 쓴 글이네. 요즘 머릿 속에 이런 저런 생각이 갈 길을 잃고 휘몰아치고 있는데, 기록을 하지 않으니 다 흘러가 소실되어 버려서 기록을 해 보자고 마음 먹고 쓰기 시작했는데, 주제도 없고 생각나는 대로 두서가 없이 써서 개판이 되어 버렸다. 이 개판 오분전인 글을 어떻게 마무리해야 할 지도 모르겠다. 이만 글을 맺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