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창 밖을 보니 대도시에 가까워진 듯, 버스가 드디어 오스트리아 빈에 도착했다. 난 이곳이 무슨 터미널인지도 모른다. 러시아 부부와 나, 이렇게 셋이 내렸다.
러시아 부부는 같이 건너편 길로 가서 택시를 잡았고, 택시 트렁크에 짐을 실은 뒤 사라졌다. 택시를 타며 아주머니가 나한테 손을 흔들었고 나도 웃으면서 손을 흔들었다. 여기서 지하철 역을 일단 찾아야 되는데. 이곳이 무슨 터미널인지도 모르고, 아는 것이 없다. 국제 고속버스가 다니는 터미널이니만큼 당연히 지하철 역이 있겠지? 싶어서 터미널 건물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육교로 건너갔더니 지하철 역이 있다.
시간은 오전 6시 40분에서 50분 정도 되었던 것 같다.
빈에 굉장히 일찍 떨어졌다. 움밧 호스텔을 갈까, 한인 민박 소미네를 갈까 고민하다가 소미네를 가기로 결정하였다. 유럽 여행을 하면서 며칠에 한 번씩 반드시 한식을 먹지 않으면 고통스러워하거나 고생스러워하는 타입은 아니지만 한식이 굉장히 맛있는 곳이라는 말을 들었고, 인터넷 평이 굉장히 좋았기 때문이다.
너무 이른 시간이라 역에 아무도 사람이 없다.
사실 이 역 이름이 뭔지 아직도 모르겠다.
3호선이라는 것 밖에. ㅋㅋㅋ
일단 사진에 보이는 어두운 인포메이션 게시판에서
아까 독일 버스 안에서 잠깐 잡혔던 와이파이에
급히 메모해 둔 소미네 찾아가는 법을 참고해 역을 확인.
Ottakring행 3호선을 타고 Neubaugasse역에 내려야 한다.
자판기에서 1.10유로짜리 1회권을 끊었다.
역시나 자율 검표를 하고, 아래로 내려간다.
뭔지 모르지만 이 역의 유래 같은 것이 써 있는 안내문을 찰칵.
다행히 엘리베이터가 있다!
캐리어를 끌고 내려가지 않아도 되어서 행복했다.
그리고 Ottakring행 전철을 기다리면 된다.
아침의 전철에는 출근하는 것 같은 시민들로 가득하다.
1분후 열차가 도착한다고 안내판에 떠 있다.
Neubaugasse역에 도착.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갔다.
기차가 가는 반대방향으로 올라가라는 메모를 따라서.
역에서 내린 방향으로 쭉 걸어가면 Maria Hilter 성당이 나타난다.
교회 앞에는 하이든의 동상이 있다.
해가 떴다.
내가 걸어온 방향은 Neubau거리. 각종 쇼핑 센터가 가득 늘어서 있는 거리였다.
교회 정면을 보면서 왼쪽 골목길로 100미터 가량 내려가면 왼쪽에 Taipei간판이 있는 4번지 건물이 보이는데 그 건물의 2층에 소미네 민박이 있다. 아파트 현관 앞에서 망설이는데 다행히 사람이 나왔다. 아파트 주민인듯, 눈이 마주치자 미소를 지어서 나도 웃어주었고 그 사람이 나온 덕에 나는 아파트로 들어갈 수 있었다.
기계식 엘리베이터가 있었는데 수리중이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캐리어를 끌고 힘겹게 올라갔다.
너무 이른 시각이다. 7시 10분. 예약도 않고 와서 초인종을 누르기는 미안해서 들어갈 수가 없었다. 하는 수 없이 계단에 짐을 놓고 기다렸다. 8시 반쯤엔 어차피 대개의 한인 민박집이 조식을 제공하는 시간이니 괜찮겠지. 8시 넘어서 초인종을 누르기로 생각하고 계속 기다리며 혹시나 싶어 휴대폰을 꺼내들었는데, 와이파이가 잡힌다. 남의 집 와이파이를 도둑질해가며 한국의 친구와 동생에게 말을 걸어 카톡으로 수다를 떨었다. 나 지금 비엔나 도착했어, 한인 민박집 앞이야. 근데 너무 이른 시간이고 예약도 안 해서 그냥 8시 될때까지 기다리고 있어, 라고. 어이가 없다는 반응들이다. 친한 친구가 작년에 동유럽 여행을 하면서 비엔나 다녀왔는데 어느 민박이냐고 물어서 "소미네야" 했더니 "거기 유명한덴데. 나는 작년에 거기 자리가 없어서 그냥 다른 민박에 묵었었어."라고 한다.
그리고 비엔나 가면 꼭 오페라 보고, 미술관은 강추니까 가 보라고 한다. 맛집은 '립스 오브 비엔나'라고 있는데 거기 립이 굉장히 맛있어. 꼭 가! 강추야! 뭐 이런저런 수다를 떨다 보니 다행히 시간이 잘 갔다.
그런데 아파트 주민이 가끔 한 사람씩 지나간다. 여기 앉아 있으면 저 사람들도 수상하게 생각하고 불안해 하겠구나 싶어서 너무 오래 앉아있어도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8시 정각이 되자, 할 수 없이 눈을 질끈 감고 초인종을 눌렀다.
20대 중반으로 보이는 젊은 한국인 청년이 문을 열어 주신다. 방금 일어나셨는지, 아주 졸린 표정으로.
"이른 아침에 대단히 죄송합니다" 하고 연신 사과를 하고, 예약을 못했는데 찾아왔는데 방이 있냐고 물었다.
"아, 저희 어머니가 지금 한국에 가 계시고, 민박 운영이 좀 그래서 룸 쉐어링으로 형식이 바뀌었어요. 조식은 제공하지 않구요. 여기 유학하는 분이나 장기 체류하시는 분들에게 방을 빌려드리고 있어요. 여긴 어떻게 알고 오셨어요?"
"어젯밤 뮌헨에서 여기 오는 길에 버스에서 잠시 와이파이가 잡혀서 검색해서 왔어요."
"일단은 아직 예약이 안 되어 빈 방이 있으니까 거기 쓰시면 돼요."
천만 다행이다. 소미네 민박이 한식이 맛있게 하기로 유명해서 찾아왔는데 조금 실망하긴 했지만, 25유로에서 20유로로 가격이 다운되었으니 뭐 괜찮다.
저 문이 출입문이다.
긴 복도와 몇 개의 방을 지나
가장 끝 방이 내가 묵었던 방이다.
유럽 특유의 나뭇바닥이 삐걱거리는 오래된 아파트였다.
내부는 깔끔하고 정갈했다.
숙소에 짐을 풀어 놓으니 안도감이 몰려왔다.
젊은 사장님이 주신 시트를 이불에 씌우고 옷가지를 정돈하는데,
사장님이 아침으로 먹으라며 신라면을 주셨다.
부엌은 쓰고 정돈만 해주면 된다는 당부도 덧붙이면서.
계란도 파도 아무 것도 들어가지 않은 라면이었지만,
유럽의 오래된 아파트에서 먹는 라면 맛은 어찌나 맛있었던지.
따뜻했고, 행복했다.
이제 오스트리아에서의 일정이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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