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ip abroad/2014 Europe

[Day06 하이델베르크] 2014.01.19. #02 1988년과 2014년의 하이델베르크

우르바시Urvasi 2015. 1. 24. 03:05






주인 부부와 나는 리나 비앤비로 돌아왔다. 그리고 MBC 촬영팀과 김용택 선생님은 오늘 출국하는 비행기라 작별을 고했다.

밤에 베를린에서처럼 유쾌한 술자리를 가지고 또 신나게 수다도 떨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그게 마지막이었다. 

3개월 후, 방송이 방영된 이후 김용택 선생님까지 모두 함께 모여 뒷풀이 자리를 가졌다고 들었는데, 나도 초청받았지만 본과 1학년 해부학 시험 기간이라 아쉽게도 참여할 수 없었다. 나중에 보니 해부학 학점도 별로 잘 나오지도 않았는데 거기 술자리나 다녀올걸 그랬다. 후회된다.ㅜㅜ



집에 돌아오고 나서 나는 옆 방으로 숙소를 옮겼다. 내가 썼던 2인실 숙소를 미리 예약한 팀이 있어서 나는 도미토리실로 물러나야 했다. 한국인 모녀였다. 40대 후반으로 보이는 뭔가 귀티나는 아주머니와 20대 중반으로 보이는 역시 귀티나는 딸이었다. 처음 보자마자 아, 나랑 성향이 다른 타입이겠다라는 느낌이 확 왔다. 하지만 선입견을 지니지 말자, 라고 생각하고 밝고 상냥하게 인사를 건넸더니 그 모녀는 어색하게 인사를 받았다. "우와~ 어머니랑 여행 오셨다니 너무 부럽다. 멋져요~ 어디어디 여행하러 오셨어요?" 물어보았지만 단답식으로 대답했고 말이 길어지는 것을 싫어하는 눈치였다.


남자 사장님이 그 모녀와 나를 앉혀 두고 지도를 주시면서 하이델베르크에 대한 안내와 숙소와 주요 관광지까지의 거리, 이동 방법, 추천 관광 코스에 대해 상세하고 꼼꼼이 설명을 해 주셨다. 원래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지도를 주고 설명을 해 주는데, 나의 경우 방송국 촬영이 있고 해서 설명이 늦어진 것. 


그랬는데 모녀 중에서 어머니 쪽이 남자 사장님에게 묻는다.


"저, (나를 가리키며 걱정스러운 어투로) 이 분하고 같이 관광하러 다녀야 되는 건가요?" 

아무리 좋게 보아도 싫은 내색. 걱정마세요. 저도 당신들이랑 같이 관광하고 싶진 않아요^^;

남자 사장님이 웃으면서 설명해 주신다.

"아니요. 그건 어머님께서 마음 가시는 대로 하면 되는 것이고, 전 우리 집 손님들 모두에게 그냥 하이델베르크에 대한 설명을 지금 드리는 것이랍니다."


역시 내 촉이 틀리지 않았다. 아마 길에서 만나서 한국인이라고 반갑다고 인사했으면 언제 봤냐고 날 아는 척하냐고 할 타입의 사람들이었다. 내가 드레스덴에서 만났던, 날 비호감의 눈초리로 힐끔 쳐다보았던 무리와 비슷한 느낌의 사람들이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한껏 멋부려 차려 입고 우아하게 관광하며 자기 무리 이외의 한국인들에게는 적의을 내뿜는 타입의 여행객들. 


그 모녀는 나중에 주인 부부가 저녁에 맥주 한 잔씩 하자고 초청했을 때도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자기들끼리 쉬고 싶다고. 

물론 자기들만의 일정이 있기 때문에 꼭 숙소나 관광지에서 다른 한국인들과 만났다고 해서 꼭 어울릴 필요는 없다. 그걸 강요하면서 남의 일정에 민폐를 끼치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다. 각각의 스타일이 있으니까. 

그래도 웃는 낯에 침은 못 뱉는 것인데, 여행을 하면 보통 마음이 열리고 느긋해지기 마련인데 꼭 남한테 저렇게 적대감을 표현해야 하나. 글쎄, 여튼 역시 나와 어울리는 타입은 아니다. 


숙소에서 조금 쉬다가 바로 거리로 나왔다.


아까 방송국 팀과 함께 움직여서 내 마음에 드는 수준까지 촬영을 하지 못했다.

내가 원하는 방식의 촬영을 하려면 끈기 있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누구도 방해하지 않고 집중할 수 있는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다.



여행 전 처음 하이델베르크에서의 촬영을 계획한 포스팅 보기(클릭)





술을 마시는 사람의 모형이 카페 외벽에 붙어 있다.

술주정뱅이의 모형.





몇 시간 전에 김용택 선생님이 앉아 계셨던 노천 카페, Perkeo





리나 B&B의 여자 사장님이 

"저 카페 이름은 술주정뱅이라는 뜻이에요. 

맥주가 굉장히 맛이 있어요.

시간 나시면 들러보셔도 좋을 텐데."

하셨던 것이 불과 몇 시간 전인데.


그때는 사람이 많고 왁자지껄하고 재미있었는데

다시 나 혼자네.


약간 쓸쓸했지만

호젓하게 아름다운 하이델베르크의 시가지를

걸어다니는 맛도 있어서 천천히 걸었다.







선제후 박물관.

하이델베르크 원인 10여 만 년 전의 원시 인류의 턱뼈가

발견되어 전시해 놓은 박물관이라고 한다.


거듭 이야기하지만 이번 여행의 철칙.

이 도시에 와서 내가 끌리는 일, 

계획했던 일만 하고,

다른 것이 유명하다고 해도 

굳이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다.



나는 이곳에 25년 7개월 전 부모님과 여동생과 했던

유럽 여행 때 찍었던 사진의 재현을 위해 왔다.

그 외에는 하이델베르크 성, 철학자의 길, 알트슈타트,

카를 테오도르 다리만 보면 된다.


유명하다는 다른 것들은 그냥 사진만 찍거나

외관만 둘러보고 지나갔다.


그리고 아까 MBC 촬영팀과 왔던 장소에 이르렀다.

삼각대를 설치하고, 사진을 꺼내 들었다.

바로 이 사진.



내가 옛날 사진을 현재 배경에 겹쳐서 찍는 작업을 하고 있노라니,

많은 사람들이 흥미있었는지 흘끔흘끔 보면서 지나가고,

아예 대놓고 내 뒤에서 구경하는 사람도 있었다.




어느새 해가 지고 있었기 때문에 색 온도가 낯다.

<서촌방향>의 작가 설재우 님이 하셨던 것을 보았을 때는 

구도와 화각 맞추기가 이렇게까지 어려운 줄 몰랐는데.





인파가 지나가서 에러가 나기도 하는 등 계속 실패 끝에

(거의 1시간 가까이 씨름했던 것 같다)





겨우 그나마 마음에 드는 샷 성공.






이건 이튿날인 1월 20일에 다시 이 거리를 찾아

한번 더 시도한 사진.

한낮에 찍은 거라 색온도가 따뜻한 느낌이 드는 사진이다.

약간의 보정을 거치기는 했지만.


이제 카를 테오도르 다리로 가야 한다.

엄마의 독사진을 재현할 차례다.





지나가다가 하이델베르크 대학교를 담아 보았다.

멀리 보이는 하얀 건물에 회색 지붕이 있는 건물이

현대의 하이델베르크 대학이고,

프레임 안에 가장 크게 잡힌 건물이 신학대학교,

그 오른쪽 옆 건물이 구 하이델베르크 대학교라고 한다.







성모교회도 지나친다.

이 교회에서는 매시 정각마다 청아한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굳이 내부까지 들어가 보지는 않았다.


오늘은 산책을 하고 싶지 베를린/드레스덴/라이프치히에서처럼

관광모드로 열심히 돌아다니고 싶지는 않다.






이 곳은 중세 시대 마녀 사냥을 하던 화형터라고 한다.

이따가 7시에 주인 부부와 여기서 만나서 맥주 한 잔 하러 가기로 했다.

산 위로 하이델베르크 고성이 보인다.





화형터 뒷편, 동상을 지나 더 윗쪽으로 올라가면

하이델베르크 성으로 올라가는 케이블카 탑승 장소가 있다.


그리고 이 부근에서 하이델베르크 성 반대뱡향,

강쪽으로 난 길을 따라 가면 카를 테오도르 다리가 나타난다.






카를 테오도르 다리.

이쯤이 엄마가 독사진을 찍었던 장소이다.

아빠가 찍어준 엄마가 포즈를 취했던 장소.




엄마는 사진을 찍어주는 아빠를 향해

웃고 계셨겠지.


당시 기종은 모르겠지만

니콘 필름 카메라로 찍었던 사진.


아무리 봐도 필름 카메라의 색감을

디지털 카메라가 쫓아갈 수는 없는 것 같다.





삼각대를 놓고 엄마 사진을 들고 같은 위치에서 

포즈를 취해 보았다.


어둑어둑 해가 질 무렵이고 빛이 점차 사라져가고 있어 촬영이 어려웠다. 눈은 삼각대에 고정된 뷰파인더에, 손은 사진을 들고 이리저리 옮겨가며 알맞은 구도가 나올 때까지 씨름하고 있노라니 많은 사람들이 지나다니며 구경을 하고 응원도 해 준다. 아예 대놓고 설명해달라는 호기심어린 눈초리로  바라보거나 뭐하는 중이냐고 묻는 사람도 있다.


"This is my mother. It's 25 years ago." 라고 이야기하면


"Gorgeous!"

"Bravo!"

"Coooooool!"


각각 외치며 엄지손가락을 외치고 웃어주고 사라졌다.


그 중 한 노신사랑 특히 좀 긴 대화를 했다. 노신사가 내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해 묻자,

"이게 우리 엄마고 25년 전이다. 나는 이때 가족 여행을 왔었는데 지금 다시 찾아서 그 때와 같은 사진을 찍으려 한다." 고 하자

"너무 아름답고 감동적이다. 하이델베르크에 대한 소감이 어떤가?" 라고 묻는다.

"굉장히 멋진 도시이다. 당신은 이곳 거주자인가?" 물었더니

"나는 이곳에서 40년간 살았다. 중간에 만하임이나 다른 곳에서 살았던 적도 있지만 결국 여기로 돌아왔다. 이렇게 멋진 도시는 없는 것 같다." 라고 말했다. 자신의 고향에 대한 자부심이 느껴져서 "멋지다."라고 했다.

그리고 5분 정도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누었는데 다른 내용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여튼 노신사도 역시 엄지손가락을 치켜들며, "당신의 부모님이 굉장히 기뻐하실 것 같다. 힘내라. 행운이 있기를."이라고 말하고 반대편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역시 여러 차례의 실패를 거듭한 끝에 겨우 완성한 사진.

사실 100% 마음에 들진 않지만

해가 넘어가는 데다 조금씩 빗방울이 떨어지고 있었고

사진이 손상될 것 같아서 이만 철수했다.


이제 하이델베르크에서 재현해야 할 사진은 한 장이 남았다.

이 사진은 내일 찍어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