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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ip abroad/2014 Europe

[Day05 라이프치히] 2014.01.18. #03 바흐 동상/바흐 박물관/성 토마스 교회








구 시청사에서 마르크트 광장을 지나 부지런히 걸으면 성 토마스 교회가 나타난다. 라이프치히 시내는 크지 않아 2시간이면 충분히 다 둘러볼 수 있다. 다행이다.






겨울 유럽여행을 하면서 느낀 것이, 이곳 사람들도 겨울엔 다른 곳으로 떠나버리니 도시가 휑뎅그렁한 경우들이 종종 있는데, 라이프치히 시내는 대학교가 있는 도시라 그런지 젊은이들이 많고 활기찼다. 나중의 일이지만 역시 대학 도시인 하이델베르크도 그러했다.





성 토마스 교회.

바흐가 청년 시절부터 오르간 연주자로 재직하여 죽을 때까지 여기서 근무했다고 알려진 교회이다.

바흐는 죽어서 이 교회에 묻혔다.





성 토마스 교회 건너편에는 Commerzbank라고 씌여 있는, 금색으로 화려하게 치장된 건물이 있다. 상업은행?

어제 커다란 팬더곰에 안긴 나체의 여자 광고 그림을 본 것이 저 건물 근처의 쇼윈도우였다.







근처에 있는 레스토랑 및 카페.

바흐와 관련된 기념품을 판매한다.





바흐 전기, 바흐 초콜릿, 커피, 머그 등이 있다.





바흐 캐릭터 과자라니. 생각도 못했다.

ㅋㅋㅋㅋㅋ





그리고 바흐 동상이 있다.

어젯밤에는 이 동상을 보지 못했다. 

외벽에 수호성인들의 조각이 잔뜩 있는 

반대편 벽만 보았기 때문이다.


아, 정말 감격스럽다. 바흐가 작곡한 모든 음악이 수록된 전집 CD를 가지고 있을 정도로 바흐의 팬인 내가 라이프치히 바흐 동상 앞에 오다니.


골드베르크 변주곡

토카타와 푸가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프랑스 조곡

이탈리아 조곡

평균율

인벤션, 신포니아

몇 개의 칸타타


등등 좋아하는 곡은 많지만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아무래도 이곳에서 듣기에는 <마태수난곡>이 역시 제격이다. 나는 계속 <마태수난곡> 제1번 Kommt ihr Töchter, helft mir klagen<오라, 딸들이여 와서 나를 슬픔에서 구하라>를 무한반복 재생해서 듣고 있다.


온몸에서 전율과 함께 소름이 돋는다. 

바흐 동상 앞에서 이따금 관광객들이 사진을 찍고 간다. 반가웠다. 나와 마찬가지로 그들도 진심으로 바흐의 팬인 것이 한눈에도 느껴졌다. 그렇지 않다면 한겨울에 구 동독의 외진 이 도시까지 왔으랴. 사용하는 언어도 문화도 가치관도 다르지만 바흐의 음악으로 그들과 나는 교감할 수 있는 것이다. 독일 전역에 널린 괴테 동상, 역시 오스트리아에 이 도시 저 도시에 많은 모차르트 동상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다. (혹시라도 이것을 괴테와 모차르트가 바흐보다 못하다고 읽는 난독인 분들은 제발 없길 바라며ㅜㅜ)

한국인 여성 두 명이 이 앞에서 아주 좋아라 하면서 사진을 찍고 바흐 박물관 안으로 들어갔다.







나도 바흐 동상 앞에서 기념 촬영을 하였다.

귀로는 마태수난곡 1번 합창을 듣는 중이다.






바로 옆에 있는 바흐 박물관.






들어갈까, 말까 한참 고민하다가 입장하였다.

입장료가 10유로로 만만찮은 가격인데

30분도 못 보고 나올 수 있는데.


에잇. 그냥 들어간다.

난 바흐를 좋아하니까.




안에 들어갔더니 말끔한 정장 차림의 안내하는 신사가 사진 촬영은 금지이고 소지품을 보관소에 맡기라고 안내해 주었다. 젠틀하고 멋진 신사였다. 그래서 바흐 박물관 내부의 사진은 없다.


관람객이 많지는 않았다. 내부는 바흐가 사용했던 하프시코드, 악보, 펜, 탁자 등의 물품들이 있고 바흐의 생애 동안 시기별로 음악의 변천사를 요약한 부분이라든지, 작곡한 음악과 관련된 유물, 바흐 가계도 같은 것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그리고 가장 재미있던 부분은 파이프에 손을 대면 음악이 나오는 장치였다. 예를 들면 BWV565라고 써 있는 파이프에 손을 가져다 대면 센서가 인식하여 <토카타와 푸가 d단조> 음악이 흘러나오는 장치였다. 난 처음에 그 장치에서 음악이 흘러나오는지 모르고 파이프 전시인가보다, 하고 보고 있었는다. 그런데 다른 쪽 파이프에 귀를 대고 있던, 역시 바흐의 팬인듯 말쑥한 차림의 한 신사가 사용법을 알려 주어 나도 음악을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서로 미소를 교환했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우리는 바흐를 사랑한다는 걸. ㅋㅋㅋ(오글오글)


한쪽에는 음악감상실도 있었다. 바흐의 모든 음악을 검색해서 들을 수 있는 터치스크린과 헤드폰, 앉아서 들을 수 있는 소파가 있는 곳이었다. 한 백발의 할아버지가 음악을 듣고 있었다. 나도 앉아서 바흐의 음악을 듣기 시작했다. 무슨 음악을 들을까 고민하다 BWV989 <아리아와 10개의 이탈리아 풍의 변주곡>을 골랐다. 나는 이 곡의 로잘린 투렉 버전을 좋아한다.


가만히 앉아서 변주곡을 듣고 있노라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내렸다. 내가 이 곡을 처음 접한 것은 4년전 2010년 내가 가장 잘 나갔던 시기인 스물 아홉 살 때였다. 직장인으로 궤도에 올랐으며 경제력도 좀 있으며 가장 매력 넘치던 시절이었는데도 나는 내가 삶의 패배자라고 생각하며 우울감에 시달리고 있었다. 자존감이 하락되어 있었고 내가 인생을 잘못 살았다는 생각과 함께 직장을 그만두느냐 마느냐 고민을 했으며 나이가 찼다는 이유로 아직은 원치 않는 결혼을 억지로 해야 하나, 이 사람을 놓아야 하나 하는 고민, 지금 무언가를 잘못 결정하면 내 삶이 다 어그러져 버릴 것 같은 두려움과 무력감에 우울증으로 시달리던 시기였다. 그때 만났던 곡이 BWV989 변주곡이었다. 로잘린 투렉의 신중하면서도 감성이 넘치는 연주가 돋보이는 앨범이었고 싸늘한 겨울바람을 맞은 채로 이 곡을 들으며 출퇴근을 했었다.


그리고 새로운 길로 도전을 하고자 직장을 그만둔 시점에 하필 살면서 겪은 최악의 사건들이 몇 개나 겹쳐서 한꺼번에 밀려왔다. 그 힘든 시절을 겨우 이겨내고 도전한 시험에 실패를 거쳐 힘겹게 합격을 했고, 입학을 한 달 가량 남겨놓은 채 여행을 왔다. 그 힘들던 시기의 내가 생각나고, 바흐의 본고장에 와서 마음 깊은 곳까지 어루만져주는 위안을 받는 기분이 들어 뭉클해서 계속 눈물이 났다.


시계를 보니, 미쳤다. 라이프치히를 떠나는 버스는 40분 후에 출발한다. 바흐 무덤을 보고, 시내에서 좀 거리가 있는 숙소까지 가서 짐을 챙긴 다음 다시 고속버스 정류장까지 가려면 시간이 빠듯하다. 이곳을 떠나고 싶지 않은데, 헤드폰을 내려놓고 흐르는 눈물을 닦고 바흐 박물관에 들어간지 20분 만에 그곳을 나오니 관리인이 이상하다는 눈으로 바라본다. 바흐의 영문판 전기를 기념품으로 구입하고 얼른 나와 성 토마스 교회로 갔다.



그런데 이상하다. 입장료를 받는 교회는 처음 봤네. 

입구에서 2유로를 입장료로 내라고 해서 일단은 냈다.

아, 토마스 교회 소년 합창단이 바흐의 합창곡을 라이브로 공연하는 날이었다. 안에는 사람이 바글바글, 시장처럼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난 저 멋진 합창을 듣지도 못하고 라이프치히를 떠나겠구나. 아, 이럴수가. 마음 속으로 탄식이 우러나왔다.


일단은 내부로 들어갔다. 바흐 무덤은 어디에 있지? 하고 헤매는데





저기 제단 앞에 있다.






Johann Sebastian Bach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


저 무덤을 본 순간, 폭포수처럼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닦고 닦고 닦아도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줄줄줄 흘러나왔다.


바흐를 좋아했지만 먼 역사 속 위대한 인물이 

신화나 전래동화 속 인물인 것처럼 존재감이 없듯이

그냥 위인이 작곡한 음악이라는 그냥 그런 기분이었는데

그가 죽어서 묻힌 무덤을 실제로 보자니

내가 살고 있는 이 세상에 300여 년 전에 존재했던 사람이구나

이 밑에 그가 생각하고, 신념을 가지고 창작활동을 하던

유기체 시절의 흔적인 유해가 바스러져 존재하는구나


그가 죽어서 없어졌듯이 인간은 유한하고 나도 언젠가 죽겠지만

음악이 아직도 전해져 내려오고 재현이 되어

나에게 감동을 주고 국적과 문화가 다른 여러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어떤 무형의 실체로서 우리에게 전해내려오고 있고

내가 죽어 없어져도 인류가 멸망하지 않는 한

음악은 남아 누군가에게 또 감동을 주고 있겠구나


이런 생각들이 휘몰아치면서 어지러울 정도로 흥분했고

눈에서는 쉬지 않고 눈물이 계속 흘러내렸다.


그러고보니 그의 무덤 앞에 꽃 한 송이 놓고 갈 것이라고 마음먹었었는데

바쁜 일정에 새까맣게 잊고 있었다.


8년 전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뭉크의 무덤을 방문했을 때는 꽃다발을 놓아주었었는데.

아뿔싸.





이렇게 주체못할 정도로 감동했는데

여길 떠나야 한다.

여기서 글로베트로터 호스텔까지는 거리가 있다.

거의 뛰어가서 짐을 가지고 가야 한다.


눈물을 흘리면서 이곳을 나왔다.




안녕, 위대한 음악의 아버지.

감사해요.

고마워.

안녕.






토마스 교회 소년 합창단의 공연을 보려고 온 사람들로 좌석이 꽉 차 있다.







교회의 오르간.

저 오르간도 바흐가 연주한 오르간일까?





교회를 나왔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속속들이 입장중이다.





소년 합창단의 대원들인 것 같다.

천상의 목소리로 하모니를 자아내겠지.

나는 그것을 들을 수 없다.




안녕, 토마스 교회.





안녕, 안녕.

아직도 눈에선 눈물이 흐른다.




바흐의 무덤을 보고 싶어서 온 라이프치히에서

바흐의 무덤이 있는 토마스 교회에서는 정작 10분 밖에 있지 못했다.

버스가 라이프치히를 떠나기 25분 전.

여기서 짐이 있는 숙소까지는 도보로 10-15분 거리,

숙소에서 버스 정류장까지도 도보로 10-15분 거리.


잘못하면 버스를 놓칠 수도 있는 상황이다.



눈물을 흘리며 나는 

경보 선수와 같은 걸음으로 걷는다.

아니, 눈물을 넘어서서

어깨를 들썩이며 나는 흐느끼고 있다.

온 몸을 떨면서 흐느끼면서 라이프치히를 떠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