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저하임의 아침 식사 시간은 8시 30분.
숙소 룸메이트인 동주 씨와 민영 씨, 나는 오늘따라 아침식사를 하러 가기가 참 꺼려졌다. 왜냐하면 MBC 방송국 촬영팀이 카메라 서너 대를 들고 숙소 안을 왔다 갔다 하고 있었으니까. 밥을 먹어야 되는데 카메라 세 대에 둘러싸여 밥을 먹자니 밥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아침은 먹어야 되니까, 하고 방을 나와 주방으로 갔다.
오늘도 맛있는 음식이 가득가득~ 김용택 시인 등장하심!
MBC 다큐멘터리인데 김용택 시인이 독일의 한인 민박을 방문하면서 민박집 주인들의 독일에서의 삶과 여행객들과의 교류 같은 것을 그리는 프로그램이라고 한다.
자율 배식을 하는데 카메라가 저렇게 똻!!
으악! 부담스러워...
그러나 나도 질세라 찰칵.ㅋㅋㅋㅋㅋ
주방 앞 코르크 판 게시판에는 방문객들의 쪽지와 베를린 지도와 관광 사진 등이 붙어 있다.
오늘의 메뉴는 미역국!
너비아니구이!
우왕 맛나겠다...
한 가득 접시에 담아가지고 상으로 날라 왔다.
오옷 식탁에 파라핀 양초가 은은하게 빛나고 있고
크로아상 등의 모닝 빵들이 한가득 담겨 있다.
요건 민박집 사장님 따님이 베이킹한 케이크인데, 굉장히 맛있었다!
김용택 시인도 여행객들과 함께 나란히 앉아서 아침 식사를 하셨다.
내가 아침 식탁에 커다란 DSLR을 목에 매고 와서 사진을 찍어대니 사진이 취미냐며 말 걸고 물어보시기도 하시고.
건축학과 학생이라는 옆의 두 청년과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셨다.
이 광경을 카메라 3대가 찍고 있었다.-_-
아 부담스러워...
이 때의 나는 카메라에 찍혔는데 이렇게 나옵니다. ㅋㅋㅋㅋ
나중에 방송이 나오고 나서 작가 언니한테 이 사진을 받았는데 새삼 신기했다.ㅋㅋㅋㅋ
시점의 차이.
시점의 차이로 인해 발생하는 재현의 차이.
여툰 다시 돌아와서.
아침 식사를 끝나고 거실로 나왔더니 주인 사장님 내외분께서 커피 한 잔 씩들 하시라며 케이크와 빵과 함께 내 오셨다.
피아노 전공자인 민영 씨와 전에 성악가이시면서 음대 교수님이셨던 남편 사장님이 담소를 나누고 있다.
물론 방송팀에 의해 유도된 이야기이긴 하다. 왜 이 민박집에 왔는지.
음대 유학생 신분으로 베를린에 오게 된 계기라든지 뭐 그런 이야기들...
바리톤을 하시지 않으셨을까. 묵직한 저음의 목소리가 인상적이었던, 함께 이야기를 나누면 즐거웠던 남편 사장님.
유레일 패스를 구입하지 못하고 왔는데 어떻게 구하냐고 여쭈어 보았더니 독일 철도 비싸다며 고속버스는 엄청 저렴하다고 고속버스를 타고 다니면 된다고 말씀해 주셨다. 그리고 몰랐는데, 고속버스 터미널이 이 민박집에서 도보 5분 거리에 있다고도 말씀해 주셨다. 오예! X이득! ㅋㅋㅋㅋ
우리가 앉아 있는 주변을 지키고 계시는 MBC PD님들.
크로아상이 맛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니다, 내가 크로아상을 먹었던가?
1년 전의 일이라 기억이 불확실하다.
방송팀은 김용택 시인과 함께 베를린 시내 관광 촬영을 위해 나갔고, 우리도 한숨 돌리며 별채(?)의 간이 숙소로 돌아왔다.
원래 어제 우리가 자던 방에 MBC 촬영팀이 예약을 해 놓아서 우리가 방을 빼야 했던 것.
방으로 건너가는 길목에 피아노가 있는데, 바흐 인벤션 1번Bach invention no.1.이 들려온다.
원래 내가 바흐 인벤션 1번을 좋아하기도 하고(특히 안드라스 쉬프와 글렌 굴드의 연주가 정말 각각의 개성대로 아름답다) 삐걱삐걱 오래된 독일의 아파트 계단을 내려가며 듣는 절제된 대위법의 선율은 물론 기분 탓이겠지만 더 짙은 감동으로 다가왔다. 아, 이런 경험을 하다니 너무 행복해서 이제 난 죽어도 좋아, 이런 기분이었다. 1년 전의 일이지만 이 순간의 아름다움만큼은 생생하게 손끝에 묻어나는 느낌이다.
다락방 숙소의 아랫층에는 피아노가 있다. 음대 유학 입학시험을 위해 베를린을 찾는 학생들에게 카이저하임 민박이 좋은 점은 방음시설이 된 피아노 연습실이 있다는 것이다.
민영씨가 들어서자 한 남학생이 부끄러워하며 벌떡 일어난다. 쇼팽, 리스트, 라흐마니노프 같은 대곡들을 연주할 수 있는 누나 앞에서 인벤션을 연주하려니 부끄러웠나보다. 민영 씨가 괜찮아~ 연습하고 있어~ 했지만 후다닥 나가버렸다.
아쉬웠다. 바흐 인벤션 1번 더 듣고 싶었는데.
나는 민영 씨에게 피아노 연주해 달라고 졸랐다. 머뭇거리더니 그녀는 피아노 앞에 앉아 손가락을 풀기 시작한다.
내가 문외한이다 보니 무슨 곡이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스케일이 화려하고 웅장한 곡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민영 씨는 여러 대가들의 곡을 가볍게 손풀기 운동하듯 연주하였다.
(화이트밸런스를 텅스텐 광으로 맞추어 놓은 걸 깜박하고 바꾸지 않아서 시퍼런 사진이 되어 버렸다)
행복한 아침이었다. 관광 따윈 어떻게 되든 상관 없는 기분.
이 간이 숙소 다락방은 카이저하임 민박집 사장님이 새로 오픈한 한식당과 연결되어 있다.
식당 내부에는 싸이와 대장금 그림이 벽화로 그려져 있다.
카운터 뒷편의 문의 까만 커튼을 젖히고 들어가면 비밀의 공간이 나타난다.
아까 민영 씨가 치던 피아노가 1층에 있고, 2층 다락에 우리가 임시로 사용하던 숙소가 있는 것이다. 더 안쪽엔 안뜰이 있다.
많은 유럽의 아파트 구조가 이랬던 것 같다.
웰빙 음식 비빔밥!
한식당을 나와 열쇠를 드리기 위해 본 숙소로 돌아갔다.
오래된 아파트의 아날로그식 엘리베이터.
숙소에 돌아갔더니 PD님과 방송 작가 분께서 식탁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카메라 막무가내로 들이대기 신공.
그러나 얼굴을 가리심.
사람 좋으신 PD님.
열쇠를 드리고 밖으로 나왔다.
내일이 베를린에서의 마지막 날이다.
베를린 관광을 할지, 드레스덴을 다녀올지 고민하다가 당일치기로 드레스덴에 다녀오기로 결정.
사실 이상하게도 드레스덴 이쁘다고 꼭 갔다 오라고 사람들이 추천하는데 나는 끌리지가 않았다.
차라리 베를린에서의 마지막 날을 더 여유있게 즐기고 싶었다.
나는 예전부터 예쁜 소도시 취향이 아니었다. 북적북적한 사람 냄새 나는 대도시가 좋지 마냥 동화 마을 같이 이쁘장하고 아기자기한 도시는 내 취향이 아니었다. 아니면 작은 소도시이더라도 너무 예쁜 도시보다는 사람 사는 냄새가 나는 도시가 좋은 것. 산토리니보다 아테네와 자킨토스가 좋았고, 체스키 크루믈로프보다 프라하와 쿠트나호라가 좋았다. 역시 인터라켄보다는 취리히가 나았고. 너무 예쁜 도시는 현실감이 없고(놀이동산에 온 것 같은 기분), 그냥 "그래 너 이쁘다. 근데 어쩌라고? 난 이뻐도 매력 못 느끼겠음" 이런 느낌.
그래서 어제도 오늘도 드레스덴을 가느냐 마느냐 엄청 고민했다. 난 라이프치히에도 가야 하는데. 그리고 하이델베르크로 넘어가야 한다. 드레스덴과 라이프치히는 고속버스로 베를린에서 1시간 남짓 걸린다. 하이델베르크는 10시간이 넘게 걸리는 장거리이다. 라이프치히는 바흐의 무덤을 찾기 위해 반드시 가야 하고, 하이델베르크는 부모님과 25년 전에 찍은 사진을 같은 장소에서 찍는 미션 때문에 반드시 가야만 한다. 드레스덴은 사람들이 예쁘니까 가 보라는 조언 이외엔 아무 것도 없다.
그렇지만 많은 사람들이 추천하는데는 이유가 있을 것이니 한번 가 보자. 안 가면 또 궁금하고 후회될 수도 있으니까. 1박 말고 당일치기로 슝 대충 둘러보고 오자, 결심함.
(그리고 다음날인 1월 16일에, 나는 드레스덴에 온 걸 완전 땅을 치고 후회하게 된다, 역시 드레스덴은 내 취향이 아니었던 것이다)
근처의 버스 터미널로 가자.
공사 현장을 지나고.
aral 주유소 건너편에 있다고 이모님이 알려 주셨는데.
어디있지?
저기 지하도를 건너면 터미널이다.
나중에 알고보니 ZOB가 베를린 종합버스 터미널의 약자라고 한다.
이때는 몰라서 그냥 지나침.
응? 저기 뭔가 강남 고속버스 터미널같이 생긴 건물이 있다. 저건가?
하고 가봤더니 국제 컨벤션 센터였다. 아놔...
여튼 거기 컨벤션 센터 직원에게 물어봤더니 길 건너 있는 건물이란다.
이 부근엔 고속도로 시작 부근이 있어서 차선도 많고 차도 많다.
저거다!
베를린 종합 터미널 도착. 두둥!
입구
eingang
이 표시만 잘 알아두면 지하철에서도 관광지에서도 헤메지 않을 수 있다.
나 대학교때 나름 교양으로 독일어 수업 들었었는데 그게 벌써 6-7년 전이다 보니
der des dem den 밖에 기억이 안 나...ㅜㅜ
함부르크까지 9유로, 프랑크푸르트까지 11유로 등등 버스표 가격이 엄청 착하고 저렴한 것을 알 수 있다.
유레일 패스 안(아니 정확히 말하면 못 끊은 거...) 끊길 천만 다행이다. 만쉐이~~!!
버스 시간표를 들여다보고,
매표소에서 발권 완료. 여권을 꼭 지참해야 함미다.
드레스덴 왕복권을 단돈 12유로에 구매 완료!
아 씐난다!
차표는 숙소에 두고
다시 오늘의 관광을 시작해 볼까나?
출발!
멍멍아, 주인은 어디 갔니?
빵 사러 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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