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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ip abroad/2014 Europe

[Day05 라이프치히] 2014.01.18. #01 하이델베르크행 버스 예매/라이프치히 전쟁기념비





아침에 일어나서 숙소 내 방 창 밖을 찍은 사진이다.

웨스틴 라이프치히 호텔과 외벽에 알록달록 애니메이션 일러스트 같은 것이 그려진 한 아파트가 보인다.

5성급 숙소가 보이는 나의 19유로짜리 호스텔.





어제는 밤에 도착해서 밖의 광경을 상상도 못했는데





옆 건물이 이런 외벽을 한 건물이었다니.

빛/어둠에 따라 바뀌는 우리의 시야,

그로 인한 인식의 차이.

새삼 경이롭다.


아침에 잠을 깰 겸 주변 산책을 10분 정도 다녀왔다. 작은 선술집과 성인용품 판매점이 있었고 산책하는 할아버지와 출근하는 시민들이 있었으며 아주 작은 실개천이 있었다. 나중에 구글 맵에서 검색해 보니  Parthe 천이었다. 카메라를 들고 나가지 않은 게 아쉽다. 아침 산책의 사진은 없다. 


들어와서 공동 샤워실에 씻으러 가는 길에 넷북으로 J.S.Bach의 마태 수난곡 일부, 토카타와 푸가, 골드베르크 변주곡 일부, BWV989 변주곡 일부, 내가 좋아하는 칸타타 한 곡을 틀어놓고, 내 아이폰으로 녹음하였다. 원래 아이튠즈를 이용하여 옮기곤 했는데 이상하게 유럽에 와서 계속 시도하는데 아이튠즈 실행이 안 되어 그냥 잡음을 감안하고서라도 직접 틀어놓고 녹음한 것이다.


왜냐하면, 오늘 바흐 박물관과 바흐의 무덤, 동상을 둘러보면서 이 음악들을 감상할 것이니까.


샤워실에 씻으러 가는 길에 까만 머리의 체구가 작고 예쁘장하게 생긴 코카시안 아가씨와 마주쳤다. 이탈리아인인가? 눈이 마주치자 서로 부끄러워하며 생긋 웃었다. 예전부터 느낀 게 한국인들은 눈이 마주치면 서로 시선을 피하거나 드물게는 눈싸움을 하는 경우도 있는데, 여기 유럽인들은 눈이 마주치면 서로 웃는 것이 인상적이었고, 그로 인해 하루종일 기분이 행복할 정도이다. 국내 도입이 시급하다고 생각되어 한국에 돌아가서 시도해 봤으나 반응이 별로 좋지 않아 그만두었던 기억이 난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쉽다.ㅜㅜ


씻고 와서 하이델베르크 행 버스를 예매하려고 하는데 와이파이가 계속 잡히지 않았다. 사실 엊저녁부터 잡히지 않았다. 그 점이 이 호스텔의 유일한 불만이다. 리셉션으로 내려가서 문의하려고 생각하고 일단은 체크아웃을 위해 짐을 꾸렸다.




짐을 모두 싸고, 시트도 벗기고 잠자리를 정리하였다.








옆 건물의 다락방을 찍으려 했으나 잘 되지 않았다.






깨끗하고 쾌적했던 숙소,

글로베트로터 호스텔 안녕.







또다시 3층에서 캐리어를 낑낑 들고 내려와서




리셉션에 짐을 맡겼다.


어젯밤에 있었던 키 큰 금발의 청년에게 열쇠와 시트를 돌려주며 여권을 다시 받았다.


"굿모닝. 어젯밤은 잘 잤나요?"

"네."

"당신은 어제 19유로로 방 하나를 쾌적하게 잘 쓴 셈이네요." 하고 그가 찡긋 해서 

"그러게요. 운이 좋았어요." 하고 나도 웃었다.


왜 와이파이가 잡히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1층 라운지에서는 잘 잡힐 거라며 오늘 새로 세팅된 비밀번호를 알려 주었다. 과연. 잘 연결된다. 내 방이 3층이어서 잘 안 잡힌 모양이다. 공유기가 숙소의 각 층마다 설치된 것은 아닌 듯-_-;


"혹시 여기서 하이델베르크로 가는 버스표를 어디서 예매해야 하나요?" 했더니 그는 아예 내 넷북을 들어서 독일 고속버스 사이트로 가서 몇 개의 티켓을 검색해 주었다.


독일 고속버스 사이트 바로 가기

meinferbus.de


"오늘 오후 3시에 출발해서 프랑크푸르트를 경유, 4시간 대기 후 밤 12시 30분에 도착하는 일정이네요. 이 표 괜찮겠어요?"

"음, 더 늦은 시간은 없나요?"

"이 시간 표가 아니면 내일 출발해야 해요."


큰일났다. 아침에 진작에 와이파이 문제를 리셉션에 물어볼 걸 괜히 혼자 삽질하느라 너무 늦어져 버렸다. 벌써 오전 11시가 다 되어 가는데 그러면 라이프치히에서 남은 시간은 3시간 반 정도가 된다. 그렇다고 내일 출발할 수는 없다. 하이델베르크에서 MBC 촬영팀과 약속한 대로 만나려면 오늘 출발하지 않으면 안 된다. 괜히 방송에 출연하겠다고 승낙했나 보다. 난 이 도시가 마음에 들었는데. 앞으로 언제 다시 올 지도 모르는데 세 시간 반 밖에 안 남았는데. 아주 짧게, 5초간 고민하다가 리셉션 직원에게 말했다.


"네, 그럼 그 표로 주세요."


그는 그 표로 예매해 주었다. 


"당신 메일로 전자 티켓이 발권되었으니 내 메일로 그 티켓을 보내세요. 내가 출력해 줄게요. 버스 탈 때 그 티켓을 제시하면 됩니다."

그래서 메일에 로그인하려 했으나 실패. 하필 네이버 메일을 한국에서 해외 로그인 제한 설정을 걸어놓았던 것이다. 

"이런, 해외에서 로그인 제한 설정을 걸어놓은 걸 깜박했어요. 어쩌죠?" 하고 내가 울상이 되자 그도 머리를 감싸쥐며

"오마이 갓!" 을 외쳤다. 한 차례 씨름하고 고생 끝에 겨우 성공했다.

정말 너무너무 고마워서 보답이라도 하고 싶었는데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감사의 인사만 하고 호스텔을 나왔다.





호스텔을 나와 시가지로 걸어간다. 다행히 라이프치히 시내의 주요 볼거리는 2~3시간이면 충분히 다 볼 수 있기는 하다.


그러나 내가 라이프치히에서 가보고 싶었던 곳이 한 군데 더 있었으니... 바로, 라이프치히 전쟁 기념비!

그곳은 시내에서 트램으로 10분 정도 가야 있는 곳이다. 다녀오면 바흐 박물관과 토마스 교회까지 보는데 시간이 완전 빠듯하다. 어떻게 할 것인가? 


걍 전쟁기념비로 가자! 

가서 1시간 이상을 쓰지 않고 돌아오면 2시간은 라이프치히 시내에 쓸 수 있겠지. 그러면 30분은 바흐 무덤에 쓰고, 1시간은 바흐 박물관에 쓰고, 30분은 삽질 및 자투리 시간으로 쓰면 된다.

카페 바움에 다시 가보려 했으나 거기는 어제 들러본 것으로 만족하고 그냥 버리자.




경보로 급히 걷는다.

트램이 있는 쪽으로 걸어가다 뒤돌아서 찍은 사진이다.




Leipzig Wilhelm-Leuschner Platz 정거장에서 트램을 타고 15분 정도 달려 

라이프치히 시 외곽의 Völkerschlachtdenkmal 역에서 내리면 된다.

(역 이름이 전쟁기념비 유적의 이름이다)





트램 역에서 내리자마자 저 멀리 전쟁기념비의 실루엣이 보인다.

도심지의 느낌은 이제 완연히 벗은 시골 읍과 같은 동네였다.

날씨는 맑았고, 새들이 지저귀고, 

공기도 청명한 가운데 고요히 솟아 있는 전쟁기념비를 바라보자니

마음이 평온해지고 행복했다.




비탈길을 올라가는 도중에 나타난 안내 표지판.






트램 역에서 길을 건너 비탈길을 올라가면


 



올라가다가 내려다본 사진.




앞에 전쟁기념비가 우뚝, 나타난다.


보자마자 오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든다. 사진으로 저 건축물의 존재감이 표현이 잘 안 되었는데 평온하고 적막한 세상의 끝에 있는 고대 유적지에 온 것만 같은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다. 누가 이런 고요한 곳에 저렇게 거대한 탑을 세울 생각을 했을까.




가까이 걸어가면 갈수록 

그 위용과 묵직한 존재감, 규모에

계속 감탄사를 연발하게 된다.

앞의 인공 호수는 매우 넓었다.


고대 이집트나 페르시아의 신전에 온 것 같은 기분이다.






앞에 걸어가는 사람들의 크기와 비교해 보면 

저 전쟁기념비(?)의 높이가 가늠이 될 것이다.





사진으로 이 멋진 풍광이 반의 반도 표현이 안 되었다.





라이프치히 시내에서는 동양인을 보기도 힘들었는데,

여기서 한국인 여성 두 명 발견.

눈이 마주쳤는데 전에 드레스덴이나 베를린에서 마주쳤던

적대적인 분위기를 뿜던 그룹들과 달리 

그녀들은 말을 걸면 친해질 수도 있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난 오늘 시간이 없어서 그냥 모른 척 했다.ㅜㅜ





이곳에서 입장권을 구매한다.





이 비석(?)은 라이프치히 전투를 기념하여 만들어졌고,

나폴레옹, 히틀러 등의 독재자들이 이곳에서 연병식이나

연설을 할 정도로 좋아했다고 하는데 과연 보니 그럴만 하다.

뭔가 종교적이고 권위적인 느낌마저 주는 건축물이니 말이다.


주권자에게 신의 계시를 내려주는 듯한 포스랄까?


입장권은 6유로.






시그마 10-20으로 건물 위쪽을 향해 잡아서 

높이는 다소 낮아 보이고 좌우가 길어지는 왜곡이 나타났다.






중간에 올라가서 아래 호수를 바라본 전경.

멀리 라이프치히 시내가 보인다.





내부는 예전 파르테논 신전의 내부를 둘러볼 때와 비슷한 

원시 종교적인 느낌이 물씬 묻어난다.





천정을 찍은 사진.





전사들의 석상.







엘리베이터를 타고 이 계단을 올라갔던가.

이 계단을 올라간 다음 엘리베이터를 탔던가.

1년전 일이라서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중간 층에서 바라본 전경.

중세 도시처럼 빨간 지붕이 옹기종기 펼쳐져 있다.







아랫층으로 내려가기 위해 엘리베이터 앞에 기대놓은 내 삼각대.

이 앞에서 대만인들과 일본인 아가씨들 여러 명을 만났다.





라이프치히 전쟁 기념비가 좋아서 계속 있고 싶었지만

나에게 이곳에 주어진 시간은 최대 1시간.

절대 1시간을 초과하면 안 된다.


그러면 이 도시에 온 목적인 바흐 무덤과 바흐 박물관을 못 보게 된다.








건물 출구로 나와서 계단을 내려가며 찍은 사진.





저 멀리 보이는 구역이 아까 매표소 쪽이다.





이곳은 사람이 별로 없어서 삼각대를 세워두고 셀프샷을 찍었다.

복대를 헐렁하게 차고 있어서 임산부처럼 배가 나왔다. ㅜㅜ





건너편에 있던 공동묘지.

겨울 숲이 매우 아름다웠다.




시그마 10-20




탐론 28-75




다시 시그마 10-20


번갈아 마운트해가며 계속 사진을 찍었다.

날이 화창한데 아까 인공호수 쪽에서 바라본 

정면이 역광이라 힘들었는데 

이 방향은 사진이 잘 나와서 좋았기 때문.





이런 거대한 건축물을 짓기 위해

이름 없는 민초들이 얼마나 고생했을까.





호수는 고요했다. 


점심시간 쯤이라서 삼삼오오 호숫가에 앉아서 수다를 떨거나, 샌드위치 따위를 싸 와서 먹는 무리도 있었다. 겨울인데도 햇살이 따뜻해서 벌렁 드러누워 있는 사람도 있다. 모든 것이 고요하고, 평온하면서도 사람들의 활기도 느껴진다. 나도 호숫가에 앉아서 마냥 계속 바흐의 음악을 듣고 싶었다. 

호스텔에서 텀블러에 담아 왔던 카누 아메리카노 커피를 마셨다. 바흐의 커피 칸타타를 들으면서, 커피를 마시면서, 따사로운 겨울 햇빛을 받으면서, 호숫가를 잠시 거닐자니 뭔가 치유받은 듯, 행복감이 물밀듯 밀려들어왔다. 라이프치히 전쟁기념비를 감상하기에 바흐의 음악은 원래 그러려고 작곡된 것처럼 쏙 잘 어울린다. 호젓한 호숫가의 여유를 길게 느낄 수 없는 것이 아쉽다.

5분만, 아니 1분만 더 있고 싶다. 이곳에.







내가 사람을 주제로 사진 찍는 것에 대해

많이 소심해져 있어서 

(앞의 포스팅에서도 여러번 썼지만 독일을 여행하며

사진촬영거부를 하도 여러번 당하다 보니)

글로는 전쟁기념비 주변의 풍광을 만끽하던 

사람들 이야기를 쓰면서도

사진으로는 풍광밖에 없네.




호숫가를 산책하는 사람들.






아름답다, 좋다, 라는 표현으로는 도저히 그 느낌을 담을 수 없었다.

왜 그런 느낌이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감격스럽고 벅차오르는 감동마저 느껴졌던

라이프치히 전쟁기념비.


나중에 연인과 손을 꼭 잡고 함께 다시 오고 싶다는 생각이 강렬하게 들었던 곳이었다.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억지로 잡아끌고 다시 비탈길을 내려가면서 찍은 사진.





전쟁기념비 건너편에 있는 트램 정거장.





이곳도 구 동독 지역이라 예의 그 특이한 보행자 신호를 볼 수 있다.





트램 정류소에서 전쟁기념비가 보인다.

귀에서 흐르는 바흐의 토카타와 푸가.

트램 정거장에 앉아 있자니,

행복하다.

이대로 죽어도 여한이 없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귀에서는 마태수난곡이 흘러 나온다.

이 감격스러운 곡을 작곡한

J.S. Bach의 무덤이 있는 성 토마스 교회로 가야 한다.

전쟁기념비에서 생각보다 시간을 지체해서

나에겐 1시간 반 가량이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