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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dical School

의전원 수험생 시절을 떠올리며.

 

 

 

 

 

이 포스팅을 올리고 나서

MEET 관련 상담 문의나 조언을 구하는 분들이 잦습니다.

 

그러나, 제가 본문에서도 분명히 밝혔듯이

이 포스팅의 목적은 MEET 공부 조언하는 수기가 아닙니다.

 

그냥 한창 의대 공부를 하다가

이전 수험생 시절 공부한 추억을

끄적거린 개인적인 포스팅일 뿐입니다.

제가 한 공부 방법이 다 맞는 것도 아니고

학교마다 지원 전략도 다르고

입학해보니, 동기들의 공부방식과 지원 전략도 다 다르고

개인별로 다 다릅니다.

 

더군다나 제가 공부했던 때는 지금으로부터 3년 전

의전원 폐지 되기 전의 일이고

지금 사정과는 더더욱 다를 것입니다.

 

 

 

뭐 궁금하신 경우 질문을 하신다면

각각의 질문에 대해 제 신상을 노출시키지 않는 선까지 

아는 만큼은 답해드릴 수 있지만,

(예 : 5월인데 물리 포기해도 되나요?

화학 문풀은 어떤 선생님 강의를 추천하나요?

저는 나이가 많은데 지금 도전해도 괜찮을까요?

이런 구체적인 질문은 제가 아는 한에서 답변드릴 수가 있죠)

 

대뜸 아무 맥락도 없이 다짜고짜

상담해달라는 요청을 받을 때마다

상당히 당혹스럽고, 난감합니다.

(예 : 상담좀 부탁드려요 ㅜㅜ

이런 부탁 정말 난감합니다

 

분명히 다시 한번 더 말씀드립니다.

저는 조언이나 상담을 드릴 수 없습니다.

 

 

이 블로그는 평범한 사람이 자기 일상을 적는 블로그입니다.

상담 블로그가 아닙니다.

 

계속 상담 요청이 들어온다면

본 포스팅을 비공개로 돌릴 생각도 하고 있습니다.

 

 

 

 

 

 

 

 

 

 

 

 

 

 

 

본과 3학년이 되어서야 MEET 시험을 준비하던 때에 대해 추억(?)해 본다.

(그 말인 즉슨 요즘 완전 널널한 과 실습중이라 시간이 남아 도는 PK라는 뜻)

 

 

 

이 블로그는 하루에 50-200명 정도가 각종 키워드 검색으로 방문하는 블로그이지만 댓글이 3~4개월에 하나 정도 달리는 수준이라 활발한 교류가 있는 블로그라고 보기엔 어폐가 있다. 나 혼자 그냥 내 일상과 사진, 여행기 등을 올리는 블로그다 보니 어떤 사람들이 내 블로그에 방문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그래서 블로그 유입 경로를 곧잘 살펴보는 편인데, 의외로 MEET나 의전원 등에 대해 검색한 경로가 많아서 오늘은 그 김에 의전원에 입학하기 전에 공부했던 나날들에 대해 포스팅해 보고자 한다.

(이 포스팅의 목적은 MEET 공부 조언하는 합격 수기가 아닙니다. 절대.)

 

돌이켜 생각해보면 수험생의 신분이었을 때 의전원을 준비하면서 가장 궁금한 것은 앞선 선배들이 어떻게 공부했는지, 슬럼프는 어떻게 극복했는지, 어떤 대학교에 지원했는지, 스펙과 영어 점수는 어땠는지, 해당 대학교에 지원하려면 MEET 점수는 몇 점 정도 나왔는지

등등에 대한 정보일 것인데 의외로 정보를 찾기가 쉬운 편은 아니었다. 지인이 있지 않는 한은. 수험생 시절이었을 때는 매우 궁금했다. 나 같으면 합격하면 신나서 합격 수기 같은 거 써서 합격 비결 같은 거 공유하고 그럴 텐데 왜 그런 사람이 드물까? 그 이유를 합격하자 마자 알 수 있었다.

 

 

합격 수기를 잘 안 쓰는 이유

 

 

첫째로, 일단 합격하니 그 고통의 나날들을 기억도 하기 싫었다. 합격의 기쁨만 누리고 싶었다. 사실 수험생 시절을 추억이라는 단어로 포장하기도 싫은 게, 괴롭고 힘들고 좌절스러운 순간이 많았고 정신적인 에너지 소모가 커서 너무나 고통스러웠던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의전원 입학한 친구들이 MEET 준비 중인 친구들에게 입학 후의 의대 전공 공부가 훨씬 힘들다, MEET 시험은 그에 비해 껌이다 라고 말하는 걸 겪어본 수험생들이 많이 있을 것이다. 나도 수험생 시절 지인인 의대생들에게 그런 소리들을 많이 들었었고.

나는 그것은 개구리 올챙이 시절 모르는, 안이하고 비겁한 사고방식에서 나오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에게는 이미 지나간 일일 뿐이니까 가볍게 느껴지는 것이지. 거의 확실하게 미래가 보장된 의대 공부에 비해(물론 성적 경쟁과 유급의 공포가 있기는 하지만…), 합격할 지 여부도 알 수 없고 미래가 불투명한 수험생의 신분이 어찌 더 쉽다 할 수 있겠는가. MEET 공부는 의대 입학 전의 기초 과학 과목들을 다루고 의대는 그 지식들을 바탕으로 한 응용 과학이니 의학 과목들 범위가 넓은 건 너무 당연한 일이고.

 

나는 수험생 시절 정신적으로 많이 힘들었었다. 몇 년 동안 멀쩡하게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완전히 새로 MEET 준비를 시작했는데 한 해 만에 바로 합격한 것도 아니고 실패와 좌절의 경험 끝에 재도전을 통해 합격한 케이스라 마음 고생이 굉장히 심했었다. 일단 합격하고 나니 정신적으로 힘들었던 그 시절을 다시 기억도 하기 싫었다. 그런 이유에서 수험생이었던 나날에 대해 어느 인터넷 공간에서도 조금도 꺼내지도 않았고 누군가와 그 시절에 대해 이야기하지도 않았다. 이제 수험생이었던 때가 벌써 3년전 일이 되다 보니 비로소 이야기를 꺼낼 수 있게 된 것이다.

 

둘째로, 공부를 하면 할 수록 뭐가 옳은 공부 방법인지 잘 모르겠다. 합격 수기들을 보면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 조언들이 많은데, 점수가 안 나와서 저 방법도 따라해 보고, 이 방법도 따라해 보면서 내가 경험해 본 바로는, 뭐가 옳은 방법인지 잘 모르겠다. 사람마다 모두 다르고, 이 방법이 어떤 사람에게는 통할 수도 있고 저 방법이 더 잘 통할 수도 있고, 어떤 방법은 그 사람에게만 통하지 다른 사람에게는 안 통하는 방법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공부했던 방법이 다른 사람에게도 통할 것인지에 대해 자신이 없어서 더욱 수기 쓰기가 꺼려지는 것 같다. (다만, 모든 시험이 그렇듯이 반복적으로 공부하는 것과 기출 문제가 중요하다는 점은 기본인 것 같다)

 

 

그러면 이제부터 수험생의 기억들을 사진과 함께 하나씩 떠올려 보겠다. 혹시라도 검색해서 오신 분들은 사진과 부연 설명을 통해서 이 정도로 공부했겠구나 정도를 느껴 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이건 내가 이렇게 공부했다는 기억의 회고이지 절대 조언이 아닙니다.

 

 

 

 

 

 

 

수험공부를 시작하면서 독서실 책상과 빛을 거의 완벽하게 차단하는 암막 커튼을 주문해서 조립하고 설치하여 방에 두었다.

 

 

 

 

독서실 책상을 구입해서 방에 설치한 모습.

 

 

 

 

암막커튼도 달았다. 불을 끄면 독서실처럼 완전 깜깜하고, 스탠드만 켜고 여기서 하루 종일 박혀 공부만 했다.

 

 

 

 

 

매일 책상에 그날 공부할 목표치를 포스트잇에 써서 붙이고 공부했다.

목표치는 일부러 항상 무리하게 잡았고, 70%정도 달성하면 대성공이었다.

 

 

 

나는 학부 때 GPA가 거의 바닥 수준으로 한참 낮았기 때문에

TEPS를 850점 정도 최상위 권으로 올리는 것이 목표였다.

그래서 영어를 열심히 했다.

 

 

 

 

 

월간 텝스도 매달 사서 풀고, 시중에 나온 유명한 텝스 문제집은 거의 다 푼 것 같다.

그래도 700점대 후반에서 정체되어 800점을 넘기기가 쉽지 않았다.

매달 TEPS 성적표를 받아들고 좌절하는 일이 반복되었다.

 

 

 

이때부터 거의 악을 쓰고 공부했다.

 

 

일단 고급 영어를 잘 아는 게 중요하겠다 싶어 《TIME》을 구독했다.

《TIME》에 나온 거의 모든 단어를 다 암기하겠다는 각오로 독하게 공부했다.

 

 

 

저 유명한 노랭이 보카는 거의 4~5번 돌리면서 900점 단어까지 다 외운 것 같다.

 

 

 

 

900점 단어는 외우고 또 외우고 미친듯이 외움.

신기한 게 이때 외운 900점 단어는 아직까지도 기억이 난다.

얼마나 필사적으로 외웠으면.

 

 

 

 

노랭이 보카의 단어들이 쉬워질 때쯤 22000 단어장도 사서 외움.

 

 

 

 

고급 영어에 익숙해지기 위해 《TIME》을 열심히 읽었다. 여기 나오는 단어 중에서 모르는 것도 밑줄 긋고 외움.

 

 

 

 

 

 

 

리스닝은 매일 쉐도잉했다. 이어폰을 귀에 꽂고 대본을 반복해서 들으면서

학원 다니는 길, 점심 먹으러 가는 길에 누가 보면 미친 사람이라고 생각할 만큼

입으로 중얼중얼 대본도 따라하고, Part 4는 무조건 dictation을 했다.

 

 

 

 

TEPS 공부가 지겨워 질 때쯤 미드를 봤다.

애론 소킨의 《뉴스룸》을 반복해서 봤다.

이 미드는 말이 굉장히 빠르고 대사도 많다.

 

 

 

《뉴스룸》은 내 취향이고 굉장히 재미있으면서도 어려운 미드였다.

TEPS의 Part 4보다 속도가 훨씬 빨라서 알아듣기 어렵다.

이 미드를 보니까 나중에 Part 4가 느리게 들릴 정도였다.

 

 

 

 

 

첫 해에는 TEPS만 했지만 다음 해에는 TOEIC도 병행해서 공부했다.

그러나 의외로 TOEIC 점수는 잘 나오지 않음.

사람들이 말하기를 TEPS 800넘길 수준이면

TOEIC은 950은 거뜬히 넘는다고들 했는데

난 토익은 겨우 900점 턱걸이를 했다.

난 뭐지?-_-;

 

 

 

 

 

 토익 시험 보기 전날, 남자친구(현재의 남편)가 주말에 도시락을 싸 들고 집에 찾아왔다.

김밥을 건네주고 가서 정말 감동하면서 먹었던 기억이 난다.

 

 

 

 

 

 

 

내가 풀었던 문제집들. 이것보다 더 많은 것 같은데 당시 사진이 없네.

 

 

 

 

 

그리고 최종적으로 받아든 성적표.

TEPS 816점.

 

이렇게 해서 겨우 800점을 넘었다.

 

로스쿨 준비생이나 특목고 출신 학생들에 비하면

썩 높은 점수는 아니지만

이 바닥에서는 꽤 선전한 점수이다.

 

토종 한국인으로서 이 이상 올리기는 힘들었고

5월이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에

이제 MEET 준비를 본격적으로 시작해야 했다.

 

 

아, 그리고 첫 해에 공인국어TOKL 시험 성적도 필요해서

기출 문제 2회분을 풀고 시험을 봤는데 3등급이 나왔다.

공인국어는 pass or fail이라서 이정도로 만족하고 준비를 함.

 

 

 

 

 

 

 

거의 대부분의 강의는 시간 절약을 위해 인강을 들었다.

 

 

 

 

화학 문제풀이반은 인강과, 인강을 제공하지 않는 선생님 강의 두 분 것을 들었다.

기출문제 강의인 ㅈㅎㄱ 강의와 강남 녹화반 ㅂㅈㅅ 강의를 들음.

이 사진은 ㅂㅈㅅ 문제풀이를 3회독한 것을 찍은 것.

 

 

 

 

강남의 한 학원에서.

 

 

 

 

 

 

 

 

 

 

 

거의 모든 문제집을 3~4회독을 했다.

처음에는 유기화학이 전략과목이었다.

거의 모든 모의고사에서 가장 잘 나오는 과목이 유기화학이었기 때문.

그리고 유기 화학 공부가 제일 재미있었다.

나름의 원리로 전자의 흐름을 느끼면서 문제를 풀 수 있게 될 때 쯤에는 신나서 쓱쓱 풀어제꼈던 것 같다.

 

그러나 본 시험에서는 유기화학이 거의 탈족해서

너무 어렵게 나왔고 투자한 것만큼 점수가 잘 나오지는 않았던 것 같다.

 

 

 

 

 

 

막상 MEET 본 시험에서 효자과목은 물리가 됐다.

문풀은 ㄱㄷㅎ선생님 것을 했지만 화학과 유기화학에 치이니

전체 양이 많아서 다 쫓아가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문풀에서 역학은 과감히 버리고

유체역학, 열역학, 전자기학, 광학, 현대물리만 공부했고

역학은 기출문제 수준만 풀었다.

만점을 목표로 하는 시험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대신 물리는 기출문제를 4회독했다. 기출만큼은 암기할 정도로 했다.

결과는 물리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았던 것 같다.

 

 

 

 

공부하면서 스트레스가 쌓이면 이따금 음주 공부를 했다.

집 앞 편의점에서 맥주를 사서 마시면서 취기에 공부를 하는 짓을(켁;)

 

 

  

 

 

 

생물은 가장 유명한 ㅂㅅㅇ만 들음. 정리노트.

 

 

 

 

 

 

문풀은  강남에서 ㅂㅅㅇ 실강을 들었다.

 

 

 

 

 

스톱워치를 켜고 공부했다.

화장실 간 시간,

딴 생각 하거나 잠깐 웹툰 따위를 보면서 쉰 시간,

엎드려 잔 시간, 식사한 시간, 책상 정리한 시간을 빼고

24시간 중에서 온전히 공부에만 집중한 시간만

스톱워치로 잰 것이다.

실제로 책상에 앉아 있던 시간은 14~15시간이다.

 

 

6월에 수시철이었고 난 GPA가 너무 낮아서 수시에서 합격하리라고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원서는 넣어 보았다. 자소서를 쓴다고 이틀을 날렸고, 친구와 남자친구, 동생에게 자소서를 보여주면서 첨삭을 받았다.

지인들의 첨삭이 큰 도움이 되었다. 내가 쓴 자소서는 형편 없었는데, 첨삭 도움을 받은 최종 자소서는 굉장했다.

 잘 쓴 자소서라고 칭찬을 많이 받았다.

 

 

 

 

 

여름엔 너무 더워져서 동네 독서실을 끊고 공부했다.

 

 

 

 

 

 

7-8월이 되어 가면서 점점 더 책상에 포스트잇이 많아졌다.

 

 

7월에 MEET 시험을 한 달 남겨두고 수시 1차 합격 발표가 났다.

경쟁률이 거의 15대 1이었나 그래서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1차 합격을 한 것이다. 눈물날 정도로 기뻤다.

 

GPA도 심각할 정도로 낮고, 나이도 많고

여러 면에서 스펙이 좋지 않은 내가(출신 학교만 좀 좋은 정도)

합격한 데는 분명 자소서 덕이 컸다고 생각한다.

 

 

 

 

 

 

 

마지막 달에는 거의 오답노트만 돌렸다.

 

 

 

 

 

가장 두려워했던 과목인 화학은 파이널 모의고사 강의도 들었다.

 

 

 

 

그리고 MEET 시험을 봤고,

찜찜한 기분으로 고사장을 나왔다.

 

자연과학2는 잘 본 것 같았는데

자연과학1이 아무래도 찝찝했다.

 

게다가 가채점을 위해 답을 받아 적어오지도 못했다.

감독관이 가채점한다고 수험표 뒤에 답을 적어가면

올해부터 부정행위처리된다고 엄포를 놓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알고 보니 다른 교실의 수험생들은 다 가채점표를 작성해서 왔더라.

분했다. 감독관을 잘못 만난 탓이라는 생각을 하니.

 

아무튼 시험이 끝나고 남자친구와 홍대에 가서 점심을 먹고 놀다가 헤어져서 집에 돌아왔다.

집에 와서 궁금해서 굳이 자연과학1을 다시 기억을 더듬어 푼 다음에 가채점을 했다.

40문제 중에서 18문제 맞았다.

 

기가 막혔다. 그렇게 열심히 공부했는데, 나는 돌대가리인가?

난 좌절했고 두 번째 해에도 망했는가 싶어서 목놓아 울었다.

다음 날도 울고, 매일 울면서 지냈다.

 

 

 

그렇지만 수시전형 면접이 남아 있었다.

MEET를 망쳐서 분명 떨어지겠지만,

그래도 면접만큼은 후회하지 않게 최선을 다하자고 마음먹었다.

 

 

 

 

 

 

 

 

마지막으로 면접 준비를 했다.

면접 기출 문제집과 기출 문제를 뽑아서 대비를 했다.

동생과 남자친구의 도움을 받아 면접 준비를 했다.

 

 

 

 

 

 

면접을 본 날.

아침에 아버지가 면접장까지 태워 주셨다.

이날 면접고사장 분위기는 좋았고

나도 최선을 다해서 대답해서 느낌이 나쁘지 않았다.

남자친구가 면접 끝난 시간에 고사장까지 마중을 나왔다.

같이 행복한 기분으로 점심을 먹었다.

 

 

이제 모든 게 끝이 났다.

 

자연과학1을 반타작해서 MEET만 망치지 않았어도

합격할 수 있었을 텐데.

 

 

 

그리고 애써 시험 결과에 대해서는 잊은 채 하루하루를 보냈다.

오랜만에 친구도 만나고 책도 읽고 못하던 일들을 하면서.

 

MEET 성적이 나왔지만 무서워서 확인하지도 않았다.

 

 

그리고 며칠 후, 문자메시지가 왔다.

 

 

 

 

 

 

 

성적표를 확인해 보니, 가채점을 잘못한 것이었다.

40문제 중에서 18문제밖에 맞지 못했다면 나올 수 없는 높은 성적이었다.

 

 

 

그렇게 합격을 했다.

2013년 10월 한 달은 내 생애 가장 행복했던 한 달이라고 생각한다.

몸 아파가면서 공부하는 걸 안쓰러워하며 물심양면으로 응원해 주시던

부모님이 뛸 듯이 좋아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더 행복했다.

직장을 그만두고 나와서 불합격했을 때에는 내 인생이 어떻게 될까 두려움에 떨기도 했고

미래를 알 수 없어 힘든 나날이었지만 합격의 기쁨은 모든 것을 보상해줄 정도로 달콤한 기쁨이었다.

 

 

 

쓰고 나서 읽어보니 합격수기네.-_-;

 

 

허리가 악화되어 11월과 12월에는 병원 치료를 받으면서 집에 누워만 있었고,

2014년 1월에는 허리가 나으면서 좀 쏘다닐 수 있게 되자

유럽 여행 비행기표를 질러서 한 달 동안 여행도 다녀왔다.

여행을 다녀 와서 골학을 듣고, 입학식을 했고, 의대 경쟁 체제 하에서

원하는 만큼 성적이 나오지 않는다는 좌절감을 맛보며 본과 3학년까지 올라왔다.

 

생각해보니 난 대학생활 경쟁체제가 싫어서

학부 시절엔 학교 다니면서 공부도 안 했고

그래서 GPA가 거의 꼴찌 수준으로 낮았다.

 

음, 안했다기보다는 내 멋대로 했다는 표현이 더 옳겠다.

시험을 위한 공부를 할 줄 모르는 사람이 시험을 공부하는 일만큼 고역은 없었다.

 

 

시험을 위한 공부는 무엇이나면 선택과 집중을 해서 단기간에 스퍼트를 올려서 최대한 완벽하게 암기를 하는 것이다.

나는 무슨 공부를 하든지 왜 그런지 궁금증이 생겨서 책을 뒤적이고 이것도 보고 저것도 보다가 시간 분배를 잘못해서 시험을 망치는 스타일이었다. 고등학교 때부터 그랬다. 그래서 원리가 중요한 국어, 수학, 사회과목들은 잘했지만 암기과목을 항상 망쳐서 수능 점수는 높은데 내신 성적이 낮은 그런 스타일.

 

 

 

의대에 와서도 20년 넘게 버릇이 된 이런 스타일이 잘 바뀌지 않는다.

그래서 노력한 만큼 성적이 잘 나오지 않아 좌절했고 힘들어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이를테면 의대의 교양 과목에서 책을 읽고 독후감을 써오라고 교수님이 과제를 내 주시면 무식하게 700 페이지의 책을 진짜로 다 읽고 독후감을 썼다. 동기들을 보면 다른 의대 전공 과목 과목 공부를 하면서 책까지 읽을 여유는 없기 때문에 대충 넘겨보고 적당히 독후감을 쓰는데, 나는 지금까지 교수님들께서 내 준 책은 진짜로 다 읽고 독후감을 썼다.

요령을 피우지도 못하겠고 피울 수도 없다. 책을 안 읽은 상태에서 독후감을 쓰려면 아무 것도 떠오르지 않는, 고지식한 스타일.

그래서 나름 공부 방법을 바꿔보려고 무던히도 노력을 해봤는데 항상 어떤 식으로든 옛날 스타일대로 돌아가서 공부를 하고 있노라는. 이런 인간이 시험을 잘 볼 리가 없다. 나름 노력을 했는데 점수가 안 나오니 점점 지쳐만 가게 된다.

 

이렇게 경쟁적인 공부만 5년째 하고 있다 보니 burn out이 왔다. PK 들어와서 내과 실습을 끝내고 나니 만사 귀찮고 아무 것도 하기 싫고 다 때려 치우고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마음만 가득.

 

그래서 초심으로 돌아가기 위해서 길게 수험 생활에 대해 끄적여 보았다. 

이렇게 간절하게 공부해서 들어온 의대이다.

 

일단은 널널한 과를 도는 동안엔 아무 생각하지 말고 머리를 식힌 다음

다시 본격적인 임상 실습에 들어가게 되면 최선을 다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