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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ip abroad/2014 Europe

[Day07 하이델베르크] 2014.01.20. #03 하이델베르크 성






 

아마 20대 초반의 나였으면 당연히 케이블카를 타지 않고 성까지 걸어올라갔겠지. 물가가 살인적으로 비쌌던 노르웨이 오스로에서 페리값 아낀다고 바이킹 박물관 보러 6km 거리, 왕복 12km를 서슴지 않고 걸어다녀왔으며, 숙박비 아끼려고 공원에서 신문지 깔고 잤던 용감한 아가씨였으니 하이델베르크 성 오르는 것 쯤이야. 30대 초반인 나는, 당연히 케이블카를 탄다. 소심하게 편도로(내려올 때는 걸어서). 40대나 50대가 되면 20대의 내가 철 없이 비웃엇던 가이드 투어를 다니겠지? 그래서 배낭 여행은 한 살이라도 젊을 때 한 번이라도 더 다니라는 것이고, 모든 것이 때가 있다는 게 그래서일 거다.



 

케이블카 입구.

 

 


 

노르웨이 베르겐, 슬롤베니아 류블라냐에 있는 것과 같은 모양의 케이블카이다.

6유로를 주고 끊은 표에는 케이블카 및 하이델베르크 성도 입장할 수 있는 이용권이 포함되어 있다.

 


 

케이블카의 내부.

 

 


 

정상에 가까워진 레일.

길이는 그렇게 길지도 않고, 가는 길에 풍광이 멋지다든가 하지도 않다.

그냥 편하게 올라가는데 의의가 있었던 케이블카.

 


 

꼭대기의 케이블카 역.

여기를 나와서 오른쪽을 보면

(역시 실외로 나오면서 깜박하고

변경하지 않은 화이트밸런스

설정으로 사진 색감 실패)

 

 


 

성 내부의 지도가 있고

 

 


 

매표소와 오디오가이드 대여소가 있다.

리나 비앤비 주인 부부가 여기에 한국어 오디오가이드도 있으니(!) 들어보라고 하셔서 들어가서 대여를 문의했더니, 월요일이라서 오디오가이드 대여를 않는다고 한다. 으악!ㅜㅜ 어제 봤어야 하는데ㅜㅜ 어제는 방송국 촬영이 있었고 그게 끝난 시간이 오후였으니 뭐 어쩔 수 있느냐만 스스로가 원망스러운 건 어쩔 수 없다.

 

 


 

그냥 마음 내키는 대로

둘러보자.

 

포도주 저장고와

발자국을 찾을 수 있을까?

 

 


 

하이델베르크 성의 입구.

 

 


 

안개가 잔뜩 낀 날이었다.

(여기는 안개끼는 날이 대부분이라고 들었던 것 같다)

안개 속에 주인을 잃고 덩그라니 폐허로 남아 있는 하이델벨르크 성은

고즈넉하면서도 상당히… 뭐랄까…, 섹시했다.

 

 





 

오디오가이드도 없고, 관광 책자 설명은 부실하고.

그래서 어디가 어딘지 잘 모르겠다.

 

 


 

안갯속 쓸쓸한 하이델베르크 성.

 


 

영주인지 기사인지 석상들과 조각들이 많이 장식되어 있었다.

 

저 기사가 있는 아래 문으로 나가면

 

 

 

 

하이델베르크 구시가지의 전망을 감상할 수 있는 테라스가 나타난다.

사진에 있는 것은 대만인인지 중국인인지 여튼 그쪽 계통 관광객들.

 

 

 


 

하아, 정말 아름답다.

그냥 아기자기 예쁘다기보다, 뭐라고 적절한 표현을 못 찾겠는데

(적절한 표현을 못 찾는 것은 글을 쓴다는 사람에 있어서 게으름을 변명하는 말 밖에 안 되지만)

마냥 예쁘다고만 하기엔 사색적인 느낌이고,

고고하다고만 하기엔 뭔가 차가움이 느껴지는 언어라 그건 아닌 것 같고,

유서깊은 전통미라고 하기엔 이 활기 넘치는 도시에 어울리잖게 뭔가 고루한 느낌이고.

 

적절한 말을 못 찾겠다.

 

 



 

테라스에서 나도 삼각대 셀프샷으로 기념 사진 한 장 찰칵.

 

 

이 테라스는 각국의 관광객들이 모두 하이델베르크에 오면 기념 사진을 찍는 포토존이라서 삼각대를 꺼내 들고 사진을 찍기가 상당히 부끄러웠다. 그렇지만 내가 만족하는 각도의 사진을 찍기에는 삼각대만한 게 없으니까 그냥 얼굴에 철판을 깔고, 삼각대를 설치하고 10초 타이머를 설정하고 사진을 찍었다. 내가 사진을 찍는 동안 수학여행을 왔는지 12~15세는 되어 보이는 남녀 청소년 무리들이 왁자지껄 떠들면서 선생님과 기념촬영을 해서 더 부끄러웠다. 떠드는 언어를 가만히 들어보니 특유의 억양이 아마도 이탈리아어 아니면 스페인어인 것 같다. 그냥 모른척 해주지 삼각대를 설치하고 사진을 찍는 나를 계속 쳐다보면서 웃고 떠든다. 얘들아 나 이상한 사람 아니야.ㅜㅜ

 

이 사진을 찍고 나서 아이들이 나한테 달려오더니 휴대폰을 내밀며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사진 찍어 주세요!"

아, 내가 사진작가인 줄 알았나보다. 싶어서 휴대폰을 받아들고 찍으려고 하는데 그게 아니라며 손을 휘젓는다.

"아니요. 당신하고 사진 같이 싶다구요!"

아이들이 모두 깔깔거리고, 소녀 둘이 내 옆에 팔짱을 끼고 사진을 찰칵 찍는다. 나는 이게 무슨 상황인가 싶어 어벙벙, 사진을 찍었다.

선생님이 기다리는지, 아이들이 달려가면서 나를 향해 고개를 돌리고 엄지를 치켜들며 소리친다.

"You are beau~~~~~tiful!"

 

헐, 그거였나. 이쁘게 봐줘서 고마워 얘들아. 오해해서 미안. 내 눈에 너네들이 훨씬 이뻐 보였는데.

아이들이 사라지고 나서 그때야 깨닫는다. 나도 저 아이들이랑 같이 사진 찍을걸.ㅜㅜ 왜 그 생각을 못 했을까. 내 셀프샷 찍는 생각만 하고. 엄청 후회했다.

 

테라스에서 멍하니 하이델베르크 시내를 쳐다보았다. 예쁜 도시도 도시지만, 그 도시와의 관계맺음에 따라 기억과 감상은 천지차이로 남는 것 같다. 방송 출연도 했고, 친절한 민박집 주인 부부가 있고, 활기찬 대학 거리가 있고, 25년 전의 기념사진 촬영지를 찾아가 다시 촬영하는 일을 하니 응원해주는 시민들과, 즐거운 대화를 나눴던 노신사가 있는 도시. 그래서 더욱 아름답게 느껴지는 도시. 그래서 이 도시가 더더욱 사랑스러울지도 모르겠다. 드레스덴도 아름다웠지만 내가 간 날은 텅 빈 유령같은 도시라 정이 느껴지지 않았지만, 거기서 또 누군가와 관계맺음이 있었다면 좋은 기억으로 남았을지도 모른다.

 

 

 


 


 

시그마 10-20 렌즈를 이용하여 전경을 담고,

 


 

 

탐론 28-75 렌즈로 바꾸어 든다.

 

 

카를 테오도르 다리도 찍어 보고.

 


 

 

어제 내가 캄캄한 가운데 휴대폰 손전등을 비추어가며 걸었던 철학자의 길이 저 언저리겠지.

 


 

 

성모 교회의 종탑도 찍어 보고.

 

 


 





 

테라스에서 멍하니 오래도록 있고 싶었지만 그쯤 하고 나와서

포도주 저장고를 찾아 나선다.

 

 


 

 

보수공사 중인 성의 망루.


 

성벽 틈새로 나는 이끼.

인간의 문명이 위대해도

자연의 힘이 훨씬 강력하다.

 


 

 

기념품 가게.

 


 



 

저 안으로 들어가면 포도주 저장고가 있다.

 


 


 

앗, 아까 나랑 같이 사진을 찍어달라고 했던 소녀들 무리 일부이다.

 

 


 

 

 

이 거대한 술통 앞에 왔다.

1988년 6월 20일에 부모님과 함께 왔었고,

이때 이 앞에서도 기념사진을 촬영한 것이 있다.

여기에 들고 오지는 않았지만.

 

너무 깜깜해서 사진을 찍기 힘들었다.


 

 

여기서 기념 사진 한 장을 찍었다.

 

그리고 아까 수학여행 중인 소녀들이 내려왔던

술통 꼭대기를 향해

나도 올라갔다.


 


 

엄청 거대하다.

 


 

 

술통 꼭대기에서 아래를 바라본 사진.

술주정뱅이의 모형이 있네.

 

이 앞에는 실제로 와인을 파는 와이너리도 있다. 몇몇의 노인양반들이 서서 담소하며 와인을 마시고 있었다. 아무리 봐도 여행객은 아닌 것 같고. 이제 나는 발자국을 찾으러 가야 한다. 그래서 노인 중 한 분에게 물었다.

"여기에 발자국footprint이 어디에 있나요?"

그들은  footprint 라는 단어를 알아듣지 못했고 나는 한참 설명을 했는데도 잘 모르더라. 포기하고 나가려고 하는데 계속 말을 건다. 어디서 왔는지 중국인지 일본인지. 나는 한국에서 왔다고 했고 그들은 하이델베르크 어떻냐며 물어서 나 여기 25년 전에 왔었는데 그 때나 지금이나 다름 없이 아름답다, 고 답했다. 그랬더니 아니 25년 전에 여기에 왔냐고 나이가 도대체 몇 살이냐며 난 너가 20대 초반인 줄 알았다, 라고 말한다(얘네나 우리나 서로 나이 못 알아보는 것은 마찬가지). 그래서 아주 어릴 때 요만할 때였다고 답했다. 그리고 그곳을 빠져나오려는데 엉뚱하게도 같이 한 잔 하자는 것이다. 미안하지만 곧 이곳을 떠나야 해서 안 된다고 아쉽다고 답하고 그곳을 나왔다.

 


 

그리고나서 기념품 가게 아주머니, 매표소 직원 등 여러 사람에게 발자국이 어디 있냐니까 고개를 갸우뚱, 한다. 그 뛰어내린 발자국 유명한 곳 아니었나? 매표소 직원에게 아주 열심히, 위에서 뛰어내리는 시늉까지 하면서 발자국이 어디있냐고 물어봤더니 고개를 갸우뚱, 하더니 아아 하면서 어딘가를 가리킨다.

 


 

 

저쪽을 가리켜서 내려갔다.

 


 

 

길 바닥에 발자국이 있나 한참 살피면서

아무리 내려가도 발자국이 없고,

이 길은 성을 내려가는 길이었다.

아놔…ㅜㅜ

 

시계를 보았는데, 어차피 시간이 얼마 없었다.

하이델베르크를 떠나는 열차가 5시 출발이니,

슬슬 내려가야 한다.

다시 올라가서 발자국을 찾을 시간은 없어

아쉽지만 다음에 또 찾기로 한다.

 

하이델베르크에 숙제를 하나 더 남기게 된 것이다.

 

 


 

 

성 옆길을 따라 쭉 내려오면

이제는 내 동네같이 친근한
이 광장이 나타난다.

 

 

 

뒤를 돌아보면 보이는 것이 이 장면.

바로 하이델베르크 성 올라가는

케이블카가 있던 자리.

그런데 한국 식당이 있다.


 


 

 

한국인은 세계 어디에든 다 진출해 있구나.

하긴, 세계의 끝 우스아이아에도 한국인이

정착해 있다는데, 하이델베르크 쯤이야 우습지 뭐.

 

 


 

 

 

요기도 이렇게 한국관이라는 이름의 레스토랑이 있다.

 

 

이제 동생이 빌려준 스타벅스 텀블러를 찾으러

어제 주인 부부와 밥을 먹었던

레스토랑을 찾으러 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