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어가르텐에서 내려와 고급 주택가와 상점 등이 늘어서 있는 거리를 따라 포츠담 광장 방향으로 남쪽으로 내려갔다. 산책하는 기분으로.
엇, 요상한 자판기가 있다.
2센트를 기념 주화로 변형시켜주는 그런 기계인 듯했다.
한국으로 치면 20-30원 정도의 가치 없는 돈이니 뭐 그럴 수는 있겠지만
독일에서 임의적인 동전 가공은 불법이 아닌가 보네. 쩝.
오오. 이 아날로그적 태엽 방식이란. 신기방기.
언제나 그렇듯 구경만 하고 시도하지는 않는다.
지금 보니, 뭐 저게 신기하다고 좋다고 사진을 네 장이나 찍었을까. 참.
거리를 따라 더 내려가 본다. 베를린의 상징인 곰 조형물이 어느 건물 앞에 서 있다.
이런 곰탱이는 베를린 시내 곳곳에서 볼 수 있다.
호텔이나 무역 센터 같은 곳이 근처에 있나 보다. 아마 소니 센터가 이 부근이라고 들었던 것 같다.
택시들이 줄지어 서 있다.
그리고 뜻밖에 반가운 간판을 마주하다.
오오오오옷!
스타벅스다! 꺅!
(이러면 된장녀인 건가)
내부 매장은 한국의 스타벅스나 여기나 다를 것이 없다(프랜차이즈니 당연하지).
라떼나 한 잔 마실까 하다가 줄이 길고 기다리기 귀찮아서 그냥 나옴.
메뉴판은 한국이랑 비슷했고, 대략 환산해보니 커피 가격도 얼추 맞다.
포츠담 광장에 이르렀을 때, 또 익숙한 간판 하나를 발견.
오오오오옷! 바피아노다!
프랜차이즈 파스타 전문점 바피아노.
서울에도 지점이 있다.
신도림 디큐브시티 5층에 있고 동생이 여길 하도 좋아해서 몇 번 끌려가서 먹었었는데
파스타 면이 담백하고 쫄깃하여 특색있는 곳이다.
정통 이탈리아 파스타라는 느낌은 살짝 약한 곳인데 독일 출신이었던 거다.
현지에서 바피아노를 보고 반가웠다. 내일 저녁에 너를 먹어주지. 찜콩!
포츠담 광장 뿐만 아니라 베를린 시내 곳곳에는 헐린 베를린 장벽들이 이렇게 전시되어 있다.
대개는 낙서나 그래피티, 예술가들의 손을 거친 작품으로 탈바꿈한 채로.
그리고 앞에는 군복을 입은 채로 여권에 관광 기념으로 비자 스탬프를 찍어주는 사람이 있다.
과거 동서 분단 시대에는 판문점처럼 동서를 오갈 수 있는 검문소가 있었는데
아마도 거기서 비자 스탬프를 찍어주었던 모양이다.
사진 찍는 걸 의식한 순간 나보고 손을 흔들면서 도장 찍고 가라고 불렀으나
난 사진만 찍고 도망옴.
포츠담 광장 역.
포츠담 광장 쪽에서 동쪽을 바라본 광경.
멀리 베를린 시내 전망을 볼 수 있는 열기구가 보인다.
저쪽 부근에 내가 가려는 테러의 토포그라피 박물관이 있다.
슬슬 이동
하기 전에 셀프 샷 찍으려고 타이머 시도하였으나
자전거가 쌩 하고 지나간다.ㅋㅋㅋㅋㅋㅋㅋㅋ
뭐가 좋다고 나는 이런 샷을 또 올린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표정은 차마...ㅋㅋㅋㅋㅋㅋㅋ
그럼에도 불구하고 꿋꿋이 셀프샷 시도.
성공.
뭔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저렇게 인증샷을 막 찍어댔는지 지금 보니 참 웃기다.ㅋㅋㅋㅋㅋㅋ
광장에서 방사상으로 도로가 여러 갈래로 뻗어 있어 헷갈렸다.
지도를 봐도 잘 모르겠다. 어떡하나 고민하고 있을 때쯤
단체 현장 학습을 나온 듯한 어린이들. 귀여워라.
부근에 이런 비석이 있다.
생몰연도가 씌어 있는 것으로 보아 무슨 집터거나 묘지인 것 같은데 배경 지식이 부족해서 한탄만 한다.
Bitcy Friday!
잡년들의 불금!
-베를린 나이트클럽-
이게 아니고... 어디로 가야 하는 거야 대체ㅜㅜ
저쪽인가? 뭔가 웅장한 건물이 보인다.
무슨 쇼핑몰이나 박람회나 센터인 듯해 보이는 건물. 역시 정체는 모르겠다.
궁금하니 가까이 가 보자.
특이한 조형물.
건물의 외관이 독특하다. 유럽은 거의 옛날 건물을 보존해서 쓰는데 이런 거대한 신식 건물이라니.
뭔가 상업적/금융적/학술적 이런 중추일 것 같은 느낌인데 아직도 정체를 모르겠다.
들어가 보고 싶었지만 갈 길이 바빠 패스.
지도를 아무리 들여다 봐도 이쪽은 아닌 것 같다.
큰일났다. 여긴 도로가 여러 갈래로 뻗어 있는 곳인데 그 길들 중에서 잘못 타면 완전 엉뚱한 곳으로 가게 된다.
당췌 어느 길로 가야 내가 가려는 방향인지 알 수가 없다.
우왕좌왕하다가 어떤 콧수염난 중년 배불뚝이 아저씨가 지나가길래 지도를 보여주며
테러의 토포그라피 박물관으로 가려면 어디로 가야 되냐고 물었다.
그분은 영어는 못하시는 듯 손짓으로 저 쪽을 가리켰다.
아항~ 아까 꼬맹이들이 있던 비석 근처 옆 길이다!
돌아왔다.
그래 현지인이 이 길이랬으니 가 보는 거야.
힘차게 다시 출발.
오~ 멋진 베엠베.
표지판이 BOY?!
도대체 무슨 광고일까. 궁금.
걷고 걷고 걷고 걷고 또 걷다 보니 아무리 봐도 뭔가 관광 책자에서 봐서 이거다 싶은 건물은 안 나오고
계속 주거지만 나타난다. 그러고 보니 배가 고프다 싶을 무렵
케밥집이 나타났다.
독일에 터키 이주민이 많아 케밥집이 참 많다고 들었는데.
무작정 들어가 본다.
오옷 피데가 2유로 밖에 안 하네. 값이 저렴하다.
케밥 재료들인가 보다.
친절했던 터키인 주인.
여행 첫 날, 현지인과의 첫 번째 조우.
아직 첫 날이라 말 거는 것도 부담스럽고 가게에 들어가서 뭘 시키기도 겁이 났는데
해 보면 별 거 아니다.
사실 옛날에 여행 많이 다니면서 현지인들과 어울리는 것 좋아하며 잘 돌아댕겼는데
몇 년 안 다니다 보면 늘 여행 갈 때마다 초기화되어 첫 순간에는 공포에 떨게 되는 것이다.
도대체 왜 그런 걸까. 사람 심리를 알다가도 모르겠다.
식당 내부에는 터키인으로 보이는 손님도 있었지만 독일인 손님이 더 많았다.
그만큼 터키 음식이 친숙하다는 이야기겠지.
나는 도네르 케밥을 굉장히 좋아해서 이걸 시켰다.
카페 라떼도 함께.
유럽 여행 온 이후 매일 커피 한 잔은 꼭 사 마셨던 것 같다.
한 잔의 커피로 인해 어찌나 행복한지.
커피 한 잔이 상징하는 '여유'
케밥 좀 봐. 정말 크다.
성인 한 끼 식사로 뚝딱 손색이 없다. 다 먹으니 무척 배가 불렀다.
근데 고기가 조금 짰다. 그래서 생수 한 병을 사 들고 이 곳을 나왔다.
그리고 또 걸었다. 계속.
그 흔한 U Bahn 표시도 안 보인다. 아까 그 아저씨 이 방향 가리킨 거, 알고 가리킨 거 맞아?
불안한 심정 반, 호기심 반으로 거리를 관찰하며 한참 걸었다.
잘못된 길로 영영 벗어나는 게 아닐까 슬슬 불안이 커져갈 때 쯤에 나타난
로또!
광고 밑에 웰컴 베를린 카드~
이게 아니고
관광 책자에서 보았던 익숙한 건축물이 나타났다!
(이래야 여행자는 안심되기 시작한다)
바로 안할터 역(Anhalter Bahnhof)의 잔해.
거대한 중앙역이었으나 2차 세계대전 때 파괴된 일부를 그대로 보존해 놓은 것이다.
곳곳에 보이던 이름 모를 꽃.
안할터 역 앞에 S Bahn도 있다. 모르면 걍 이걸 타고 움직이자 생각할 때쯤,
지도에 안할터 역 표시가 있어 방향을 잡을 수 있었다.
이런! 아까 그 아저씨 엉뚱한 방향 알려준 거 맞잖아!!
포츠담 광장에서 동쪽으로 난 거리를 따라 왔어야 하는데 남동쪽으로 와서
테러의 토포그라피 박물관 쪽에서 멀어져 버렸다.
그래도 다행이다. 아예 남쪽이라든지 엉뚱한 방향으로 가진 않아서. 조금 돌아온 셈이다.
방향을 잡고, 다시 출발.
흔한 그래피티.
앗 열기구가 보인다. 맞는 방향으로 온 것이다.
그러니까 원래 포츠담 광장에서 아래의 이 길을 따라 왔어야 맞는 건데
이 건물들을 지나면 테러의 토포그라피 박물관이 있는데
나는 포츠담에서 길을 잘못들어 우연히 안할터 역 쪽으로 흘러들었다가
거기서 출발하여 북쪽으로 이 길을 따라 온 것이다.
테러의 토포그라피(Topographie des Terrors) 박물관 도착.
이 곳은 베를린 장벽이 원형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곳이다.
마치 세상의 끝에 온 마냥 적막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싸늘한 겨울 공기가 가라앉아 있었고, 하늘은 흐릿했다.
자동차 엔진 소리도, 사람의 말 소리도, 기계 돌아가는 소리도 나지 않고,
가끔 새 지저귀는 소리만 들려올 뿐이었다.
마치 이곳이 어떤 곳인지 모두가 아는 것처럼...
또다시 인증샷. 여행 다닐 때는 편한 기능성인 옷을 입는 걸 좋아해서 저렇게 입었는데
사진을 보니 후회된다. 아무리 겨울이어도 밝은 외투와 머플러를 가져갈걸...
내가 국민학교 3학년 때 거실의 TV에서 속보로 독일이 통일되었다는 뉴스가 들려왔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린 마음에도 독일이 부러웠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때는 우리나라도 당장이라도 통일이 될 것만 같았고
9시 뉴스에서 5~10년 내에 남북통일 가능하다는 헤드라인이 뜨던 시절이었다.
1991년도.
그 후로 20여 년이 지났어도 통일이 될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
누구 하나 진심으로 통일을 바라는 사람은 없다.
기득권들은 '외부의 적'이라는 존재 가치로서 북한이 있어야 편하니까.
외부의 적을 상정해야 내부 결속이 되고
내부의 모순과 불합리한 현실들을 가릴 수 있으니까.
많은 구 동독인들이 자유를 찾아 이 장벽을 넘다가 처형당했을 것이다.
인상적이어서 발길이 차마 떨어지지 않던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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