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억지로 끌고 테러의 토포그라피 박물관을 뒤로 하고 떠났다.
이 때쯤 발이 아주 아파왔다.
한국에서 허리랑 발목이 안 좋아서 치료받고 2-3주 가량 누워만 있었는데.
그래서 부모님 동생 모두 여행 가는 것 극구 말렸는데 예금 통장 무작정 하나 깨고 비행기표 질러서 온 여행인데 첫 날부터 이렇게 힘들다니 어떡하나 걱정이 되었는데 사람은 참 신기하다.
정신력이 중요한가보다. 이 타국에서 쓰러지면 누가 나를 돌보랴 라는 위기의식(?)에서 비롯한 정신력도 강하지만, 호기심에서 기인하는 정신력도 만만찮게 파워풀하다. '피로를 잊은 채' 라는 진부한 수식어가 딱인 상황인 듯. 재미있는 구경거리가 나타나면 또다시 힘내서 걷게 되는 것이다.
열기구 체험 현장이 나타났다. 테러의 토포그라피에서 2~3분 정도 골으면 바로 나타난다.
오 신기신기~
별로 타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았다.
전승 기념탑 같은데에서도 전망을 볼 수 있는데 뭘. 하고.
기구 체험 옆에는 트라비 사파리가 있다.
요 자동차가 바로 트라비!
음 트라비가 뭐냐면 구 동독의 자동차인데 여기가 옛날에 동베를린이었던 지역이니
이걸 관광상품화 해서 이 차를 타고 베를린 시내를 돌 수 있게 한 것이다.
아이디어 참 좋다.
이런 면에서 통일된 독일이 정말 부럽다.
역사적 아픔과 시대의 변화, 문화의 차이로부터 부가가치를 창출해 낸 좋은 사례가 아닌가.
옆에는 곰탱이가 소시지를 들고 있다.
이때는 잘 몰랐는데 나중에 민박집에서 사람들이랑 이야기하며 알았는데
커리 부어스트가 베를린 시민의 애환이 담긴 대표적인 음식이라 상징적이라고 한다.
오옷 마침 내가 도착했을 때 열기구가 떠오르기 시작해서 구경구경.
겨울에도 추운데 열기구를 타는 사람이 있다.
(열기구 맞나? 이 기구의 정확한 이름이 뭔지는 잘 모르겠다)
얼룩말 무늬의 트라비 위로 날아오르는 열기구.
이곳이 기구를 타는 매표소.
바로 옆에 트라비 사파리가 있다.
기념품으로 자동차 번호판을 판매하는 모양이다.
트라비 사파리는 해 보고 싶었는데. 국제 운전면허증도 끊어 왔건만.
오늘은 영업하는 날이 아닌가 보다. 그리고 베를린에서의 내 일정은 여유롭지 않다.
다음 기회(가 있을까?ㅜㅜ)로 미루도록 하고.
하릴없이 기념 사진이나 찍어 본다.
눈이 웃기게 나와서 가려주는 미덕.
갖가지 색깔별로 귀여운 트라비 자동차들이 나란히 나란히
인력거도 있네.
여기서 좀만 더 가면 체크 포인트 찰리가 나올 것이다.
주변에 역사적 사실을 기록하는 판넬 구조물들이 있다.
오오 드디어 체크포인트 찰리에 다 와 가나 보다.
분단 시절의 사진 자료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여기가 한국으로 치면 공동경비구역 J.S.A. 같은 곳이었다고 한다.
동/서 베를린을 왕래할 수 있는 세 곳의 검문소가 있었는데
그 중에서도 미군이 관리하던 검문소가
체크 포인트 찰리.
앗 저기 보인다.
근처에는 냉전 시대 군인들이 사용하던 액세서리들을 판매하는 노점이 많이 있었다.
크리스마스가 지난 지 3주 가량 지난 시점이라 아직 트리도 세워져 있었고.
옛날 냉전시대에는 삼엄한 공포스러운 곳이었겠지만 지금은 활기차 보이는 관광지이다.
분위기가 묘해서 여러 각도에서 사진을 찍어 보았다.
비자 도장을 찍어준다는 깃발이 펄럭인다.
물론 가짜 비자이지만 관광 기념품인 셈이다.
무시무시한 경고문이 나무 판넬에 씌여 있다.
영어/러시아어/프랑스어/독일어 4개 국어로.
마침 베를린 시내 투어 버스가 지나간다.
오옷 트라비가 지나간다. 부럽다.
나도 타보고 싶어~~
일단 또다시 초췌한 내 얼굴을 굳이 인증샷 찍어 주시고.
얘들도 날 손짓하며 부른다. 2유로인가를 내고 함께 기념촬영을 해주는 군인 코스튬 사내들.
난 거to the절.
길을 건너와서 찍은 사진.
이 부근은 번화가이다.
그러면서도 장벽 박물관들이 여러 군데에 있기도 한 뭔가 특이한 분위기의 지역이었다.
스타벅스나 맥도날드 같은 프랜차이즈도 여기 저기 보이고.
장벽을 뜯어 내어 전시하는 곳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체크포인트 찰리 박물관.
동독에서 서독으로 목숨걸고 탈출하는 사람들의 처절한 역사를 재현한 박물관이라고 한다.
자동차 밑바닥에 몸을 매달거나, 담을 넘고, 기구를 타거나 땅굴을 파는 등
자유를 갈망하는 절박한 사람들에 대한 기록을 보여주는 곳이라고 한다.
난 들어가 보지는 않았다.
그 유명한 두 서기장의 키스신.
구 소련 브레즈네프와 동독 호네커의 키스.
원화는 이스트사이드 갤러리에서 볼 수 있다.
옛날엔 공포스러운 대상이었던 장벽의 잔해에 이렇게 깜찍한 그림이.
체크포인트 찰리 박물관 건물의 외벽에는 이상한 훈장인지 문양같은 것이 커다랗게 박혀 있다.
저것도 구 동독 군대의 상징 같은 것이 아닐까, 추측해 본다.
관광지도 누구에게는 일상.
독일에서는 추운 날씨에도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사람이 많다.
밀리터리 코스튬을 한 남자들.
비자 스탬프를 찍어주고 있다.
검문 초소 내부의 광경.
반 공산주의 인권 운동가인 라이너 힐데브란트의 초상이 전시되어 있다.
체크포인트 찰리 박물관을 처음 만든 분이라고 한다.
현재 이 분을 기념한 라이너 힐데브란트 인권상도 있다고.
밀덕들이 보면 아주 좋아할 광경.jpg.
DDR.
Deutsche Demokratische Republik(독일 민주 공화국, 구 동독)의 약자.
구 동독 국기와 수갑도 있네.
방독면도 판다.
주변에 밀덕이 없어서 패스.
체크포인트 찰리에서 건너편을 보면 벽 박물관이 있는데(맞나? 가물가물)
그 앞의 인도에는 다양한 설치 미술로서의 장벽 잔해들이 전시되어 있다.
기념 촬영.
그리고 그 옆에는 냉전 시대 기록물 사진들과 역사적 배경을 설명한 글이 함께 전시되어 있고
많은 관광객들이 이 주위를 어슬렁 거린다.
(사실 겨울이라 그리 많은 관광객은 아니다. 다른 곳에 하도 사람이 없어서;;)
그리고 헐리기 이전 베를린 장벽이 있던 자리에 표시가 있다.
내 신발샷.
노파인더로도 찍어보고 엎드려도 찍어보고 이 흔적을 이래저래 카메라에 담아 보다가
한 발은 서독에, 한 발은 동독에 놓고 사진 찍기 놀이.
근데 나중에 보니 오른발이 장벽 위에 얹혀서 실패.ㅜㅜ
내가 이러고 노는 걸 보고 많은 외국인 관광객들이 날 따라 이렇게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ㅋㅋㅋ
여기까지 보고 나서 겐다르멘 마르크트 광장으로 가는 길에,
근처에 커리 부어스트 박물관이 있다고 해서 들러 보기로 한다.
현재 시각 2014년 1월 14일 오후 4시.
한국보다 훨씬 위도가 높은 베를린의 짦은 겨울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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