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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ip abroad/2014 Europe

[Day04 라이프치히] 2014.01.17. #01 안녕 베를린, 라이프치히로 출발









MBC 촬영팀은 새벽부터 일찍 숙소를 떠나고, 다른 방의 손님들도 체크아웃 했고, 장기 투숙객인 민영 씨도 오늘 하루 일정이 있어 다른 도시로 가서 없다. 동주 씨와 나만 남았다.

늘 북적북적하던 카이저하임 민박이 조용해지니 뭔가 섭섭한 기분이 들었다.





손님이 우리 둘 뿐이어도 언제나 정갈한 아침이 준비되는 민박집.




동주 씨와 나는 계속 맛있어요를 연발하며 아침을 먹었다.





오늘은 주인 이모님(여자 사장님)과 함께 아침 식사를 하면서 많은 수다를 떨었던 것 같다.

아침 식사 준비에 어떤 정성을 쏟으시는지 자세히 들을 수 있었다.


숙박객들이 와서 어떻게 친해지고 놀았는지, 이모님과 남자 사장님에 대한 이야기,

내가 결혼 예정이라니까 결혼에 대한 이야기 등 

시시콜콜한 사람 사는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 재미있었다.






카이저하임 민박에서 항상 클래식이 흘러나와 운치 있는 아침을 맞이할 수 있도록 한 일등 공신

트랜지스터 라디오. 아주 오래된 물건이라고 하셨다. 그래도 성능만 좋고 멋진 아이.






주방 창가를 빼곡이 채우고 있는 파릇파릇한 식물들







남자 사장님도 일어나셔서 아침을 드신다.

아침을 먹고, 이제 짐을 싸러 간다.

오늘은 라이프치히로 떠나야 한다.


여행에서 가장 아쉽고 흥분되고 설레는 순간이다.

첫 숙소 떠나기.

한국에서 예약해놓은 첫 숙소는

타지에서 집과 같은 기분이 든다.

이곳을 떠나면 이제 진짜 길 위의 나만 존재하는 그런 기분인 셈이다.






어제까지는 북적북적했던 응접실이 텅 비어 있다.



떠나기 전에 주인 이모님의 손길이 닿은 구석구석을 카메라에 담았다.












내가 묵었던 방의 창 밖.






부지런히 집안을 오가며 일하시는 주인 이모님.





내가 2, 3일 차에 묵었던 피아노가 있는 다락방과 

한식당으로 이어지는 길이 있는 비밀의 문.






이제 진짜로 짐을 거의 다 쌌다. 





안녕, 카이저하임.




주인 이모님께 방명록을 써 드렸다.

잘 묵고 간다고.

"나중에는 꼭 신랑이랑 놀러 와." 라시며

날 꼭 안아주시던 이모님.


안녕히 계세요.

잊지 못한 베를린의 추억을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안녕.


등짐을 매고, 삼각대를 매고,

카메라 가방을 매고,

무거운 캐리어를 덜덜덜 끌면서 

숙소를 나와 ZOB로 향한다.


가는 길에 엄청 긴장했던 기억이 난다.

하나라도 소매치기 당할까봐

몸에 단단히 붙들어 매고

캐리어 손잡이는 손으로 힘주어 꽉 쥐고 

돌길에 덜덜덜 끌며 터미널로

향하던 걸음이 기억이 난다.



ZOB에 도착해서 

오후 2시 30분에 

라이프치히로 출발하는 표를 끊었다.

숙소도 무엇도 아무 것도 정해지지 않았다.

가이드에 나온 게스트하우스로 찾아가 볼 생각이다.


아침에 일어나서 민박집에서 늑장부리다 보니

늦은 표를 끊게 되었다.

여기에서 라이프치히까지는 약 1시간에서 1시간 반 정도 걸린다.


도착하면 또 해가 뉘엿뉘엿 질 텐데.

민박집 조식을 먹고 빨리빨리 준비했어야 하는데.


그렇지만 며칠간의 빡센 일정으로 

심신이 지쳐 있어

서두를 원동력도 없었고,

서둘러서 짐을 챙기면

꼭 빠뜨리는 것들이 생겨

천천히 짐을 싸느라 그랬으니

어쩔 수 없지, 뭐.



터미널의 구내 매점에 들어가서 

크로아상과 샌드위치를 구입했다.

아직도 그 터미널 매점의 분위기가

생생하다.


배낭 여행객과는 거리가 먼,

일상의 생활로서 

고속 버스를 타는 시민들로 가득했다.

코카시안 뿐만 아니라 

흑인, 히스패닉 등

많은 사람이 섞여 있었다.


캐리어 손잡이를 무의식적으로 꽉 움켜쥐고

먹을거리를 고르고, 질질 끌고 다니면서

계산하느라 진땀 흘렸던 기억이 난다.


나의 모든 생존 수단들을 내 몸에 가깝게 진 채,

어디로 갈 지 숙소도 정해지지 않은 채로

그냥 길 위로 나선 것이다.


이제 정말 나 혼자다.


여행시 가장 긴장되고 

흥분되는 순간.


9년전 생각이 난다.

첫 유럽 여행에서

5박을 묵었던 파리의 첫 숙소를 떠나

니스로 가는 길에서 느꼈던

묘한 쾌감을.


이 길 위에서 쓰러지면

날 아무도 챙겨주지 않은채

그대로 죽을 수도 있겠지.


이제부터 정말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라는 긴장감으로 인해

굉장히 흥분되고

설레는 순간.




벤치에 앉아 크로아상과 샌드위치를 먹는다.

음료는 텀블러에 타 놓은 카누 커피.






한국인이 아무도 없어서 마음이 편했다.

내가 여기서 무슨 짓을 해도 신경쓸 사람이 없는 거니까.


여기 독일 시민들은 내가 하는 일에 거의 신경을 쓰지 않는다.

내가 기다란 삼각대에 카메라를 올려 놓고 10초 타이머를 맞추어 놓고

달려가서 포즈를 취하고 다시 카메라 쪽으로 돌아와

뷰파인더를 확인하고 맘에 안 들면 이 짓을 반복하든 말든


내가 맘에 드는 구도의 사진을 찍기 위해 땅바닥에 엎드리든 말든

길거리에서 샌드위치와 커피를 마시며 걸어가든 말든


아무도 쳐다보지 않고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다.


군중 속에 마음 편히 푹 파묻힌 느낌이라

혼자하는 여행으로서는 

힐끔거리는 한국인이 없는 편이 낫다.





1시간 가까이 벤치에 앉아서 기다렸던 것 같다.

무슨 생각을 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냥 재미있어서 사람 구경을 했던 것 같다.



버스가 도착하고,

짐을 지고 버스에 올랐다.


이제 베를린과 작별이다.

안녕, 베를린.

보고 싶을 거야.







겨울 해가 서서히 지평선으로 떨어지고 있다.



드디어 라이프치히로 출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