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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ip abroad/2014 Europe

[Day08 빈] 2014.01.21. #04 벨베데레 궁전, 미션 완료/유디트의 외설적인 눈동자






쉔브룬을 나와 벨베데레까지 향한다. 사실 여기서 벨베데레까지는 40-50분쯤? 시간이 꽤 걸린다. 이틀에 두 궁전 모두 다 보기엔 좀 무리인 일정이라고 생각되나, 고집있는 성격인 나는 벨베데레로 향한다. 빨리 이 미션을 끝내고 싶었다. 오후 3시경에 환승역인 Karlsplatz 역에서 내려서 전철역 내에 있는, 오스트리아 내의 대중적인 프랜차이즈 테이크아웃 카페인 듯한 곳에 들어가 딱딱했지만 부드럽고 맛있었던 샌드위치 하나와 카페 라떼 한 잔을 주문하여 우적우적 천천히 씹어 먹었다. 그 흔한 매장 내 사진이나 음식 사진조차도 없는 것 보면 난 그때 매우 지쳐있긴 지쳐있었나 보다. 


그리고나서, 벨베데레 역으로 향했다. 아마도 Stephanplatz에서 내려서 S-Bahn을 탔다. 1번인지 17번이었는지 기억이 없다. 몸살기가 있을 때 특징인 뼛속까지 시린 추위, 근피로, 오한이 몰려오는데도 죽어라고 오기로 벨베데레로 향하고 있었고, 가는 도중의 사진은 에라 모르겠다 싶어서 한 장도 찍지 않아서 없다. 기록도 없고, 사진도 없고 아무 흔적이 없어 100% 기억에만 의존하는 서술이다.


벨베데레 궁 부근에 내렸는데 부근엔 나름 빈에서 가장 유명한 관광지라는데도 궁전의 담벼락 옆은 지나다니는 사람이 거의 없어 텅 비어 있고 건너편 아파트에도 인적이 퍽 뜸해서 좀 놀랐다. 구름이 낀 데다 해질 무렵이 다 되어가니 음침한 분위기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가끔 둘씩 짝지은 관광객이 5분에 한 팀 정도 궁전 입구로 향했다. 나는 일단은 벨베데레 궁전 입구로 들어갔다. 그리고  Upper Belvedere 궁전에서 예의 그 조각상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1988년도에 비해 조각상이 더 깔끔해진 느낌이다.




비가 내렸다. 삼각대를 설치하고, 카메라를 연결하고, 우산을 받치고, 초점이 맞도록 사진을 계속 조정하면서 10초 타이머를 누르고, 타이머 설정 기간동안 숨을 참고 움직이지 않는 등 계속 반복해서 사진을 찍었으나, 날이 흐려 와서 쉽지 않았다. 내일 또 여기로 오고 싶지 않아서 몸살기에 온 몸의 마디가 비명을 지르는데도 힘들게 해 냈다. 우산을 받치면 그림자가 지고, 우산을 떼면 사진에 빗방울이 떨어져 사진이 손상되는 딜레마를 겪으면서 힘겹게 완성해냄.






그리고 여기서 그 때의 포즈를 취했던 자리에 가서 사진을 찍었다.

거의 기진맥진해서 쓰러지기 일보직전인데 억지로 찍은 사진이다.






의무감으로 억지로 찍은 벨베데레 궁전 정원의 전경.

저 아래 궁전까지는 힘들어서 내려가지도 않았다.





 여성의 상반신에 개의 몸통에 날개를 단 이 기묘한 조각상도 한번 더 찍어주고.


사실 빈에 와서 미술관, 박물관은 가지 않겠다고 결심했었지만 벨베데레 궁전에 유명한 구스타프 클림트와 에곤 쉴레의 작품이 있다는 말에 온 김에 보고 가자 싶어서 10유로 하는 티켓을 끊어 안으로 들어갔다. 

(이런 방식의 관람도 괜찮은 것 같다. 나는 9년 전에 루브르 박물관을 갔을 때, 수십 만 개의 소장품 중에서 <모나 리자>, <밀로의 비너스>, <정의의 여신상> 이렇게 딱 세 작품만 보고 나왔다. 루브르 티켓이 아깝긴 했지만 파리 뮤지엄 패스인데다 관심 없는 것에 쏟는 시간이 더 아까웠기 때문에 만족스러웠던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유명한 클림트의 그림과 내가 전기까지 사서 읽을 정도로 좋아했던 에곤 쉴레의 그림만 감상하였다.


1년 전이고, 기록과 사진도 없고, 하필 그 날은 관광과 여행의 흥분도 감동도 없고, 지독한 몸살 기운에 의무적으로 억지로 수행한 관광이라서 기억에 남는 것이 거의 없지만(벨베데레 궁전으로 들어가던 한국인 20대 커플 관람객, 코카시안 노부부 관람객, 가랑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사람이 거의 없었던 기억과 내 콜라병을 입구의 기묘한 조각상 앞에 두고 왔었는데 관람이 끝나고 나서도 그 콜라병이 조각상 앞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는 것 밖에 기억나는 것이 없다. 그 외에 미술관 내부라든지 직원이 어떻게 생겼는지, 몇 층이었으며 배치가 어떤 구조로 되어 있었는지 등등은 하나도 기억에 남는 것이 없다), 딱 하나 강렬하게 기억에 남는 작품이 있다.





바로 구스타프 클림트의 <유디트>.

물론 그 유명한 <키스>도 있었고 훌륭한 작품이었지만 아직도 기억에 선명한 것은 <유디트>이다.


나는 클림트의 작품을 그다지 좋아하지도 않고, 싫어하지도 않는다. 내게 있어 클림트의 작품은 퇴폐적인 주제를 화려하고 아름답게 장식했네, 그래서 인기가 많은가 보네~ 싶은 그냥 그런 작품이었다. 그런데 실제로 <유디트>를 보고 나서는, 그냥 캔버스에 사람이 장난질한 창작물에 불과할 뿐인데 이런 강렬한 아우라를 뿜어내다니 하고 넋을 잃고 이 앞에서 움직이지 않고 계속 작품을 바라봤던 것 같다. 


구약성서 <사사기>에 등장하는 유디트에 관한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당시 홀로페르네스라는 장군이 전투에서 패하고 나서 도주하다 우유를 마시고 싶다며 외딴 농가로 도망쳐 들어왔는데, 그 농가의 여주인이 바로 유디트였다. 알았다며 우유를 주고, 손님 방에서 안심하라며 잠을 재운 다음에 유디트는 민족의 적이라며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벤다. 그리고 나서 유대 군사들이 몰려왔을 때 적장의 목을 넘겨 주주었다는 이야기이다. 

수많은 용사들이 아닌 연약한 여성이 적장의 목을 베는 가장 큰 공로를 세운 점이 후대의 예술가에게 계속 영감을 주었는지, 이 일화는 많은 예술가들이 다루었다. 미켈란젤로, 카라바조 같은 거장들에서부터 수많은 예술가들이 다루었는데, 클림트의 유디트에는 별 관심이 없었었다. 너무 작위적이고 화려하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실제로 본 <유디트>의 아우라와 포스는 장난이 아니었다. 지금 이 화면으로 보아도 야한데, 실제로 보면 훨씬 외설적인 느낌마저 든다. <나 방금 이 남자랑 아주 끝내주는 성행위하고 나서 불시에 이 남자 목을 베었어. 지금 내가 들고 있는 게 그 남자 목이야~ 아직도 아까 그 흥분이 남아 있네~하악하악~> 거의 이런 기분이 느껴지는, 유디트의 눈은 상당히 음란하다. 이런 작품을 그리다니 클림트 이 변태쉑히, 이런 생각이 들 정도로 상당히 충격적이었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남성이 주로 그리는 여성의 이미지는 성녀(어머니)/악녀(창녀)구도인데 이 작품의 유디트는 완벽하게 후자에 들어맞고 있었다. 남성을 유혹하여 순간의 쾌락을 안겨주고 파멸시키는 존재로서의 여성이라는 여성관이 녹아 있는 작품이랄까. (그 관점에 대한 판단은 제쳐두고) 그런 <악녀>로서의 여성관이 매혹적으로 그려진 예술적인 작품이었다. 만약 오스트리아의 빈에서 벨베데레 궁전에 갈 기회가 생긴다면, 미술관을 관람할 기회가 생긴다면, 반드시 구스타프 클림트의 <유디트>는 꼭 보시라고 강력추천하는 바이다.



이 작품을 보고 나와서 나는 어떻게 숙소까지 들어갔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오한으로 온 몸이 떨리며 머리털이 쭈뼛 섰고, 이대로는 여기서 병이 나겠다 싶어서 숙소에 들어가 바로 쓰러졌다. 이번 여행을 시작한 이후로, 항상 그 도시의 야경은 구경했었는데 6~7시쯤 숙소로 돌아가서 다음날 까지 10시간도 넘게 계속 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