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월 13일 새벽 5시 반.
이제는 정말 나가야 한다. 6시 반 까지는 얼추 도착할 수 있겠지 라고 생각했는데 아버지가 걱정하시더니 차로 공항버스 리무진 정류소까지 데려다 주시겠단다. 걱정하는 가족들의 배웅을 받으며 꾸린 짐을 들고, 미처 옷도 갈아입지 못한 채 패딩점퍼를 걸치고 집을 나섰다.
한파가 몰아치던, 정말 추웠던 날이었다. 그날 새벽 날씨가 영하 12도까지 떨어졌던 걸로 기억한다.
이 시간에 정류소에서 추운데 기다려야 하냐며 걱정하시던 아버지는 차를 돌려 바로 인천국제공항으로 향하셨다. 정말 고마웠다. 추웠고, 월요일 새벽이라 인적은 드물고, 여자 혼자서 하는 여행이고, 걱정도 되면서 못 믿기기도 하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교차했다. 그리고 우리 자매가 학교 입학하기 전에도 우릴 데리고 엄마와 함께 세계 방방곡곡을 여행을 하며 좋아하셨던 아버지인데 10년 넘게 비행기 한 번 못 타봤다고 한탄하시는 아빠. 마음이 짠해졌다. 아빠, 올해는 꼭 여행 보내드릴게요.
아버지도 일찍 출근하셔야 하시는데 굳이 공항까지 데려다 주셔서 감동했다. 공항에 도착하니 6시 30분.
아버지가 입구까지 캐리어를 옮겨다 주셨다.
“무겁죠? 수화물 무게 한도 초과하는 게 아닌가 몰라.”
아버지가 한번 캐리어를 번쩍 드시더니
“괜찮다. 이 정도면 15키로 정도 하겠네.”
(아버지 보내고 체크아웃하면서 나중에 재 보니 정말 15.7키로였다. 우엥... 아부지...ㅠㅠ)
내가 탈 비행기는 아시아나 항공 8시 30분 출발 베이징행. 베이징 국제공항에서 2시간 대기 후 오스트리아 빈으로 가는 오스트리아 항공으로 환승해야 한다. 체크인하러 갔다가 난 정말 깜짝 놀랐다. 아니 월요일 새벽부터 어마어마한 대기줄이…. 1월 비수기 월요일 새벽이라 공항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있으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여행사 패키지 여행팀인 것 같았는데 내 앞에 이백명은 넘는 대기자들이 줄 서 있었다. 일단은 로밍 신청부터 하고 돌아와 나도 줄을 섰다.
줄이 굉장히 길다. 월요일 새벽 6시 반인데!
여기서 한 시간을 넘게 기다렸다. 겨우 내 차례가 돌아왔을 때가 7시 30분. 기절할 노릇이다. 면세점도 못 보겠구나.
체크인을 하는데 옛날에 8년 전 유럽여행 했을 때 설레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이제는 그때보다는 무덤덤해졌는데, 어린 나이일 수록 주변 세계와 관계맺음에 대한 감수성을 표출하는 반응이 더 풍부하니 그런 게 아닐까, 역시 내가 나이를 먹어가는구나 라고 생각하니 조금 서글퍼졌다. 여튼 혼자 사진찍고 놀면서 한 시간 넘게 체크인을 기다림. 추운 겨울 정초부터 이 많은 사람들은 모두 어디로 가는 것일까, 생각하면서.
광각렌즈로 내 발을 찍으니 과장된 원근감으로 인해 발이 저 멀리 보인다. 신기하다 데헷. 나도 이때만큼은 롱다리?ㅋㅋ
드디어 내 차례가 다가왔다. 한 시간 넘게 체크인 대기 줄에서 기다린 것 같다. 나는 오스트리아 항공을 타고 베를린으로 갈 예정이지만, 오스트리아 항공이 한국에 취항하지 않으므로 같은 스타얼라이언스 팀인 아시아나 항공을 이용하여 북경을 경유해야 한다. 내가 부칠 짐은 캐리어와 삼각대. 리셉션 직원분이 삼각대를 따로 부치는 것보다 캐리어 안에 넣는 게 더 나을거라고 하셔서 데스크 앞에서 캐리어를 열고 삼각대를 짐 사이로 쑤셔 넣는 볼썽사나운 장면을 연출했다. 흑흑. 무게는 15.7kg이 나왔다. 아빠의 계량 감각에 감탄!+_+
항공사 직원 분들은 모두 친절하시기야 하지만, 특히 이 때 체크인을 담당하셨던 분이 아직까지도 잊지 못할 친절을 베풀어 주셔서 기억에 남는다.
“음… 북경 공항에서 대기 시간이 두 시간 반이시네요. 조금 불안하네요. 혹시 창가 자리나 복도 쪽 중에서 선호하는 좌석이 있으실 텐데… 낑겨 가는 불편함이 있으식겠지만 그래도 가운뎃 좌석이지만 되도록 앞 줄에 앉는 게 나으실 거에요. 다른 데는 안 그런데 북경 공항이 transfer과정이 까다롭거든요. 보안 검색대를 통과하는 데 시간이 좀 걸리니 최대한 줄 서는 시간이 짧도록 비즈니스 석 두 번째 뒷 자리에 앉으시는 게 나을 거에요. 북경까지는 어차피 한 시간 밖에 안 걸리니까 한 시간 정도만 좀 불편하게 가시더라도 환승 시간을 줄이시고, 오스트리아 빈까지는 원하는 좌석에 앉아 가시는 게 좋으실 것 같아요. 괜찮으시겠어요?”
전문가의 말이니 뭐 그러겠다고 했고, 체크인을 마치고 나니 7시 40분이 되어서 마음이 급해졌다. 8시 15분에는 게이트를 닫는다. 출국 심사대로 향하는 줄이 매우 길었고 서둘러서 800유로 가량 현금으로 환전을 한 다음 줄을 섰다.
그리고 한 10분이 지났을까. 아뿔싸. 여행자 보험을 드는 걸 깜박했다. 다시 여행자보험을 들고 줄을 서면 제 시간 내 해당 게이트까지 도달하지 못 할 수도 있다. 남자친구와 통화하다가 어떡하지 고민했고 남친의 잔소리를 들으며 그냥 눈물을 머금고 보험도 안 들고 출국하기로 결정. 여행하는 내내 아무 탈 없기를 간절히 바라면서.ㅠ.ㅠ
그리고 나서 긴 보안 검색대를 통과하다가 맥가이버 나이프를 압수당했다. 수화물에 부쳤어야 하는데 급하게 짐을 싸다가 백팩에 쑤셔넣다 보니 실수했다. 한번도 사용하지 않은 새 거였는데! 옛날에는 이런 것까지 잡지 않았던 걸로 기억하는데. 울화통이 터졌다. 급하게 여행을 준비하다 보니 벌써 초장부터 삐그덕 거리는 게 스스로에게 매우 화가 나서 씩씩거리면서 내가 비행기를 탈 게이트로 향했다. 나는 매 여행 때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인천 공항 면세점과는 인연이 없구나, 하고 눈물을 머금으며 모든 면세점을 지나쳐서 땀날 정도로 빠른 걸음으로 걸었다.
그 와중에 사진 찍는 건 또 잊지 않는다. 게이트로 향하는 무빙 워크 위에 걸린 시계가 8시 10분을 가리키고 있다. 8시 30분 출발하는 비행기인데 내가 얼마나 다급한 상황인 지를 알 수 있다.ㅋㅋ
아빠가 인천까지 데려다 주실 때만 해도 칠흑같이 어두운 밤이었었는데. 어느덧 동이 터와 아침이 되었다.
각 국마다의 언어로 신문이 구비되어 있는 걸 보는 건 항상 두근거리는 일이다. 사실 이런 사진을 찍는 데는 큰 용기가 필요하다. 뒤에서 사람들이 밀려오는 흐름을 잠시 훼방놓고 사진을 찰칵 찍는 철판도 깔아야 하고 부끄러움도 감수해야 하고. 하하.
그 많은 여행가방, 골프가방을 들고 있던 여행사 패키지 여행객들은 다 어디로 갔는지 안 보이고 내가 탄 북경행 비행기에는 주로 출장을 가는 듯한 정장 차림의 회사원들이 많았다. 내 양 옆에도 각각 30대 중반과 40대 후반으로 보이는 정장 차림의 두 남성이 앉았고, 늘 출근하는 회사원의 찌든 표정으로 잠을 청하기 시작했다. 밤새 짐싸고 후줄근한 차림으로 세수도 못 하고 비행기 놓칠 세라 뛰어온 주제에 신나서 촌스럽게 사진을 찍어대는 나와는 너무 대조되는 장면이었다.ㅋㅋ
드디어 출발. 29일간의 유럽 여행의 시작이다.
(언제까지 출발하는 이야기만 하고 있을 것인가 ㅜㅜ 바쁜 의대생활로 자주 포스팅은 못 하지만 꼭 올해 내로 완결하고 말 것임!!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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